“다음 시즌 후배들 경기를 멀거니 바라봐야 실감 날 것 같은데요.”
16년에 걸친 코트 인생을 막 마감한 김주성(39)을 19일 서울 동작구 흑석동 자택 근처에서 만났는데 늘 그렇듯 무덤덤했다. 전날 2점 차로 2연승 뒤 4연패로 챔피언을 SK에 뺏긴 서울 잠실학생체육관 원정 팀 대기실에서 ‘만화 같은’ 한 시즌을 보낸 후배들을 일일이 안아 줬다며 웃었다. 이만큼 달려온 것만 해도 대단하다고 다독였다. 그리고 강원 원주 숙소로 돌아가 이상범 감독과 모든 선수들이 모여 맥주 200캔을 마셨다고 덧붙였다.
프로농구 현역에서 갓 은퇴한 김주성이 19일 서울 동작구 흑석동 자택 근처에서
신록을 배경으로 장래 설계를 이야기하고 있다.
김주성은 “힘들게 한 시즌을 이겨낸 후배들에게 우승을 선물하지 못해 미안할 따름”이라고 입을 열었다. 순간 3쿼터 벤치에서 자유투를 실패한 동료를 보며 슛 자세를 가다듬던 김주성의 모습이 떠올랐다. 2002년 신인 드래프트로 TG 삼보에 입단, 데뷔 시즌 우승을 시작으로 세 차례나 우승 트로피를 안아 DB(옛 동부)와 우승 역사를 함께한 그의 마지막 공식 경기는 10분 활약에 2득점 2리바운드로 다소 아쉽게 끝났다.
김주성(당시 동부)이 한창 ‘잘나가던’ 2015년 12월 30일 오리온을 맞아 프로농구 사상 첫 1000블록을 달성하는 장면.
하지만 행복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렇게 화려한 선수도 아니었고 수비나 궂은일을 묵묵히 하는 쪽이었는데” KBL 최초로 은퇴 투어를 해 적잖은 이들에게 부담을 준 것도 고마우면서 미안한 일이었단다.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와 챔프전 MVP를 두 차례씩 차지했고 통산 득점(1만 278점)과 리바운드(4425개), 출전(742경기) 모두 역대 두 번째다. 슛블록 1037개와 플레이오프 통산 1502득점 1위다. 남자농구 선수론 유일하게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두 개나 목에 걸었다.
은퇴 시즌을 마친 뒤 가장 고마운 이로는 이 감독을 꼽았다. “프로 와서 맞은 다섯 감독 중 놀라운 리더십과 장악력을 보여 줬다. 선수에게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고 경기에 나서지 못해 위축됐던 이들에게 과감하게 기회를 주셨다. 그래서 꼴찌나 면하고 젊은 선수들의 기량이나 키우자던 터에 똘똘 뭉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지난 시즌을 마친 뒤 은퇴할까 고민했던 날 베테랑의 역할을 기대하며 붙잡아 준 게 고맙다. 누가 이렇게 정규 우승에 챔프전까지 뛰고 은퇴하겠느냐”고 되물었다.
은퇴 시즌 내내 불필요한 항의를 하지 말자고 마음먹었다고 털어놓은 그는 “경쟁해야 하는 스포츠니까 더 잘하고 싶은 마음에 그랬던 선수로 팬들에게 기억됐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오는 8월쯤 미국 캘리포니아로 어학연수를 겸해 가족과 함께 떠날 계획이다. “트렌드에 맞게 한국농구가 어떻게 바뀌어야 할지 고민할 것”이라고 했다.
헤어지며 오른손을 내민 ‘동부산성’의 손등과 손목에 생채기 세 군데가 눈에 띄었다. 꽤 오래된 것 같다고 했더니 “요건 4강 플레이오프 때, 요것들은 이번 챔프전 때”라고 했다. 저 생채기가 지도자 밑거름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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