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농구계에서 오래된 미덕중 하나는 ‘겸손’이다. 자신이 그날 경기에서 대활약을 했어도 팀에 공을 돌리고, 본인보다 커리어가 떨어지는 선배와 비교되는 경우 무조건 자신을 낮춘다. 진심일 수는 있어도 하나같이 천편일률적인 인터뷰가 많은지라 해외처럼 본인 위주로 좀더 솔직할 필요도 있다는 의견도 있어 왔다.
최근에는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미국 등처럼 한껏 자유분방하지는 않더라도 무조건 겸손하기만 한 것이 아닌 적절하게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기도 한다. 일부 선수에 한해서는 마음껏 프라이드를 뽐내는 경우도 있다. 두경민(31·184㎝)이 대표적이다. 이관희, 이대성 등과 함께 자기애가 강하기로 유명한 선수중 한명인 그는 각종 인터뷰와 행보를 통해 이같은 성향을 거침없이 드러내고 있다.
두경민은 이번 자유계약(FA) 시장에서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물을 얻었다. 대어급으로 분류됐던 것과 달리 인기가 없어도 너무 없었다. 김선형, 이승현, 허웅 등이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것과 달리 관심도가 낮았다. 수도권 선호 루머와 함께 이기적인 성향, 팀 분위기에 좋지않은 영향을 끼치는 선수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각 팀들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것이다.
이는 전성기가 지났음에도 좋은 조건으로 삼성에 합류한 노장 이정현과 확실히 비교되는 부분이다. 삼성 역시 이정현이 예전같지 않음을 잘 알고 있었으나 특유의 리더십과 후배들에게 끼치는 긍정적인 영향력을 높이 샀다. 두경민이 평가절하되었던 결정적 이유였던 이 부분이 각팀들 입장에서는 매우 중요하게 검토되었음을 알 수 있다.
두경민 입장에서는 다소 억울한 부분도 있을 수도 있겠지만 적지않은 시간 동안 쌓인 부정적인 이미지를 한순간에 떨쳐내기는 쉽지않아보인다. 그정도까지는 아닐수도 있겠으나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랴’라는 인식이 만들어진지 오래다. 그렇다고 한팀의 전력을 바꿔놓을 정도로 압도적인 기량을 갖췄거나, 많은 열성 팬을 보유한 것도 아니다. 거액을 들여 영입할 메리트가 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위기의 두경민을 구한 것은 친정팀 DB였다. DB 역시 두경민이 우선 영입 대상은 아니었지만 간판스타 허웅(29‧185.2cm)을 놓치자 부랴부랴 차선책을 고민하기 시작했고 당시 남아있던 대상중 가장 이름값이 높던 두경민에게 손을 내밀게됐다. 허웅이 남아있었다면 두경민은 더더욱 곤란한 상황에 처했을 공산이 크다.
하지만 두경민은 여전히 자신만만하다. “허웅에게 밀렸다는 평가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를 것 같다. 해석은 각자의 자유일 뿐이다. 굳이 어떤 특정 선수 때문에 승부욕이 생기는 성격은 아니다”며 특유의 프라이드를 잃지않는 듯한 반응을 드러냈다. ‘자부심만큼은 역대급이다’는 평가에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여기에 대한 팬들의 반응도 다양하다. ‘어느 정도는 냉정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시각도 중요하다. 무조건 적인 프라이드는 외려 독이 될 수 있다’는 의견부터 ‘그러한 자부심이 있기에 이만큼 성장 할 수 있었다. 그에게 자부심, 자기애, 프라이드 등은 에너지 그 자체다’며 그러한 모습을 좋게보고 응원하는 모습도 적지않다.
이같은 두경민의 프라이드는 예전부터 유명했다. 경희대 시절 두경민은 김민구, 김종규 등에 이어 팀내 3번째 옵션이었다. 신장이 작은 관계로 1번 포지션을 맡고 있었지만 리딩, 패싱게임 등은 대부분 슈팅가드 김민구의 몫이었다. 하지만 두경민은 주눅들지않고 특유의 자신감 넘치는 공격력으로 본인의 강점을 키워나갔다. 자신이 김민구, 김종규보다 못할게 없다는 자부심이 넘쳐흘렀다. 보통의 넘버3에게서는 볼 수 없는 특별한 모습이었다.
이후 DB에 입단해서도 두경민은 두둑한 배짱을 앞세워 빠른 시간 내에 자리를 잡아간다. 루키때부터 슛던지는 것을 두려워하지않아 ‘심장만큼은 이미 베테랑급이다’는 호평을 받았다. 시야, 리딩 등에서는 아쉬움이 있었으나 과감한 공격 본능 만큼은 일품이었다. 자신감 있는 슈팅에 스피드를 살린 돌파력도 상당했다. 다소 기복은 있지만 흥이난다 싶으면 수비시에도 파이팅이 넘쳐흘렀다.
두경민은 과거 김병철이 그랬듯 앞선에서 압도적으로 경기를 풀어줄 수 있는 슈퍼 에이스가 있을 때 더더욱 강한 존재감을 발휘한다. 김민구와 함께 하던 경희대 시절이 그랬고 DB에서는 디온테 버튼 우산효과도 많이 받았다. DB 역대 최고 단신 외국인선수로 꼽히는 버튼이 상대 수비를 휘젓는 가운데 그로인해 생기는 빈틈에서 많은 득점을 올렸다. 이같은 활약을 바탕으로 정규리그 MVP까지 수상하기도 한다.
당시 DB에서 버튼의 존재감은 절대적이었다. 버튼이 코트에 있을 때와 없을 때의 경기력 편차가 심했다. 이를 의식한 듯 버튼은 각종 인터뷰 등을 통해 자신보다는 동료에게 공을 돌리는 듯한 발언을 의도적으로 자주하는 모습이었다. 두경민 또한 “우리는 어느 누구 한사람이 주역이 되는 팀이 아니다. 모두가 함께 고르게 활약하는 팀이다”며 버튼만 있는 것이 아니다는 것을 종종 강조했다.
두경민은 DB에서 데뷔했고 이후 꾸준히 좋은 경기력을 보여왔다. 잠깐 타팀에 갔다가 왔지만 어쨌든 FA를 통해 돌아왔고 전체적으로 DB색이 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DB팬들 사이에서도 압도적인 프랜차이즈로서는 인정을 못받는 분위기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태업논란 등 잊을만하면 한번씩 불거지던 구설수가 적지않은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한국가스공사에서 잠깐 있던 시절에도 톡톡 튀는 개성은 여전했다. 타팀 선배 이관희의 장난기 가득한 도발에 강력하게 대응하는 등 빅마우스로서의 모습을 잃지않았다. 단순히 받아치는데 그치지않고 이관희의 커리어나 팀 공헌도를 지적하는 모습에서는 보는 사람에 따라 ‘우리는 급이 다르다’는 느낌까지 받을 수 있었다. 두경민의 남다른 프라이드가 재확인되는 장면이었다.
프로의 세계는 냉정하다. 개성이 넘치는 선수가 빼어난 기량을 앞세워 성적을 보여준다면 개성은 인기의 또 다른 요소가 되기도 한다. 반면 그냥 개성만 강하다면 아무런 반응도 얻지못하던가 아님 관종같은 취급을 받을 수도 있다. 과정도 중요하겠지만 결과물에 따라 포장이 되기도 혹은 악화되기도 한다.
두경민은 여러가지 이유로 호불호가 갈리는 선수다. 하지만 완전히 한쪽으로 이미지가 고착화되지는 않았다. 아직 많지 않은 나이 등을 감안했을 때 본인의 캐릭터를 바꿀 기회는 얼마든지있다. 선수에게 자신감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에서 프라이드가 강하다는 것은 결코 나쁘지않다. 다만 제대로 된 커리어가 쌓이기 위해서는 그것에 대한 증명도 꼭 필요하다.
두경민은 친정팀으로 복귀하는 과정에서 자존심이 적지않게 상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에게 익숙한 팀이라는 점에서 마음편하게 재도약을 꿈꾸기에도 더없이 좋은 환경이다. 원조 돌격대장으로서 DB산성의 부활을 이끌 수 있다면 그의 높은 프라이드는 밖에서부터 먼저 인정해줄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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