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넌 히터' 김재현(전 SK)는 얼마 전 한국에 잠시 돌아왔다. LA 다저스 산하 마이너리그팀서 코치 연수중이지만 오는 25일에 있을 은퇴식(문학 SK-LG전)에 참가하기 위해 조금 일찍 비행기를 탔다.
그가 한국에 온 시기는 SK가 올시즌 최대 위기를 겪던 때와 궤를 같이 한다. 물론 김재현은 가장 먼저 SK 선수들을 찾아가 등을 두드려줬다.
흥미로운 것은 SK가 김재현이 한국에 돌아온 뒤 다시 안정권에 접어들었다는 점이다. 4번의 시리즈를 연속으로 위닝 시리즈로 가져가며 흔들리던 1위 자리를 꾸준하게 지켜내고 있다.
그저 우연의 일치였을까.
SK가 위기에 놓이자 김성근 SK 감독은 선수들과 대화 시간을 자주 가졌다. 1:1 면담을 통해 잠자고 있던 투지와 절실함을 깨우려 애썼다. 그리고 또 한사람. 김재현의 한마디도 팀에 큰 힘이 됐다.
SK는 지난 9일 목동 넥센전서 9-10으로 패했다. 3-8로 뒤지던 경기를 끈질기게 따라붙어 9-8로 뒤집었지만 결국 9회말 끝내기 패배를 당했다. 잘 싸운 경기이긴 했지만 아쉬움 역시 컸다. 2루수 정근우는 8회말 1사 만루서 유한준의 안타성 타구를 멋지게 뛰어오르며 직접 잡아낸 뒤 2루주자까지 아웃시키는 최고의 플레이를 펼쳤다. 하지만 9회말 수비서는 빗맞은 타구가 안타가 되거나 보이지 않는 실수로 주자가 쌓이며 역전패를 당하고 말았다.
정근우는 김재현에게 말했다. "8회에 잘 잡아 병살을 만들긴 했는데 뭔가 계속 쫓기는 기분이 들더라구요. 꼭 2009년 한국시리즈 7차전 같았어요. 이기고는 있지만 마음을 놓을 수 없는 느낌. 결국 그런 부담이 실수로 이어지는 것 같았어요. 그런 것들이 너무 힘들어요."
김재현은 답 역시 2009년 한국시리즈에 있었다. 그 패배가 선수들에게 준 교훈을 잊지 말라는 뜻이었다. "우리가 작년(2010년)에 어떻게 우승했냐. 전력이 좋아서가 아니었다. 네가 말한 2009년 한국시리즈 7차전의 억울함이 가장 큰 힘이었다. 당시 그 경기도 우리가 그래서 놓쳤다. 분명 이기고 있었지만 우리를 믿지 못하다가 역전패를 했다. 그런 억울함을 당하지 않으려고 더 많이 훈련하고 노력해서 결국 이겨냈다. 우리가 매번 했던 말이 "다시는 그런 억울함을 남기지 말자"였다. 쫓기는 기분이 들 땐 그때 그 억울함을 다시 떠올리면서 버텨보자."
또 다른 선수는 김재현에게 또 다른 고민을 털어놓았다.
"다른 팀들이 우리하고 경기할 때 정말 이 악물고 해요. 어떻게든 이기겠다고 덤벼드니까 매 경기 부담되는게 사실입니다. 더 집중하고 더 파이팅 내면서 붙어와요. 우리랑 할 때 일부러 액션이 커지는 선수들도 많고. 기분이 나쁘기도 하고...그런 부분들이 힘듭니다."
김재현의 답은 간단했다. "그건 기분 좋아해야 할 일이다. 우리를 그만큼 인정하고 있다는 뜻이니까. 다른 팀들보다 우리가 더 절실하고 절박하게 야구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온 거다. 더 많이 뛰고 훈련하면서 지켜낸 자리다. 영광이라고 생각하고 담담하게 맞서자. 우리가 흘린 땀이 틀리지 않았다는 건 지난 시간들이 증명해주지 않았냐. 상대가 도발해 오는 건 그만큼 우리가 두렵기 때문이다.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할 일을 왜 괴로워하냐."
김재현은 SK가 지난 4년간 최고의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빼놓을 수 없는 구심점이었다. 단순히 성적만으로는 그를 설명할 수 없다. 일찌감치 대타로 교체된 경기서도 그는 덕아웃 한켠을 지키며 동료들과 함께 야구를 했다.
"한국에서 가장 까다로운 타자는 김재현이다. 그는 매 타석 '뭔가 해줄 것 같다'는 기대를 갖게하는 타자였다"는 옛 동료 카도쿠라(현 삼성)의 말은 김재현의 팀 내 존재감이 어떤 것이었는지 잘 설명해준다.
은퇴식이 끝나면 그는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게 된다. 하지만 김재현이 SK와 함께 했던 시간의 무게감까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진심이었고 또 그 진한 다짐은 여전히 동료들의 가슴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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