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희의 스포츠 춘추

[매거진S] LG 투수 주키치 “야구가 곧 가족이다.”

라데츠(radetz) 2012. 9. 28. 15:53

 

"야구와 추수감사절의 공통점은 가족이 함께 있어야 제 맛이라는 것이다"
미국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말이다.

 

미국에 추수감사절이 있다면 한국엔 추석이 있다. 한 해 농사를 마감하고, 가족이 모여 지난날을 감사한다는 의미에서 추수감사절과 추석은 의미가 같다. 추석 즈음, 한 시즌을 마감하는 프로야구 선수들에게도 추석의 의미는 각별하다. 외국인 선수라면 어떨까.

 

이국땅에서 맞는 그들의 추석은 더 각별할 수밖에 없다. 낯선 외국어와 그보다 낯선 환경에서 외국인 선수들은 우리의 추석을 추수감사절 삼아 가족과 함께 보낸다. <스포츠춘추>가 가족의 명절 ‘추석’을 맞아 LG 트윈스 투수 벤자민 주키치(30) 가족을 만났다. 한국에서 외국인 선수와 그 가족으로 산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묻기 위해서였다.

 

벤자민 주키치의 시간은 거꾸로 갔다.

 

주키치는 2006년 메이저리그팀에 입단했다. 그해 신인 드래프트 13라운드에서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는 다코타 웨슬리안 대학 왼손투수 주키치를 지명했다. 당시 오클랜드는 “날카로운 속구와 수준급 변화구를 던지는 왼손투수를 잡았다”며 흡족해했다. 웨슬리안 대학도 흡족하긴 마찬가지였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주키치가 웨슬리안 대학 개교 이래 메이저리그에 지명된 최초의 선수였기 때문이다.

 

주키치는 ‘노아의 방주’에 승선한 기분을 느꼈다. 그도 그럴 게 대학을 세 군데나 전전했던 무명의 주키치가 프로에 가리라곤 그 자신도 상상하지 못했다. 출발은 좋았다. 2007년 주키치는 마이너리그 하이싱글 A에서 8승 2패 평균자책 3.55를 기록했다. 그해 신시내티 레즈로 트레이됐지만, 주키치는 여전히 촉망받는 유망주였다. 신시내티 마이너리그팀에서도 성적은 나쁘지 않았다. 그해 미국 스포츠채널 ESPN은 ‘가장 빨리 빅리그 무대를 밟을 유망주 투수 21위’로 주키치를 지목했다.

 

2008년 더블A를 거쳐 트리플A로 승격한 주키치는 2010년 트리플A 무대에서 7승 4패 평균자책 3.90을 기록했다. 기록만 보자면 메이저리그로 승격돼도 놀랄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주키치는 끝내 빅리그행을 통보받지 못했다. 자신보다 성적이 떨어지는 선수들이 빅리그 무대를 밟는 걸 보고 주키치는 무력감을 느꼈다. 주키치는 당시를 “시간이 거꾸로 흐르던 때”로 기억한다.

 

미래가 보이지 않던 주키치에게 그즈음 손을 내민 이가 있었다. LG였다. 2011시즌을 대비해 새로운 외국인 투수를 찾던 LG는 주키치의 가능성에 집중했다. 왼손인데다 그의 투구성향이 한국 프로야구에서 통할 것이란 결론을 내렸다. 키(Key)는 주키치가 쥐고 있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연봉만 따지자면 한국행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마이너리그와 비교하면 큰 차이였다. 그러나 주키치는 주저했다. 에이전트는 “10시간이 넘는 장거리 원정 버스도, 싸구려 모텔도, 한 끼 식사를 대신하던 햄버거와도 모두 안녕을 고할 수 있다. 빅리그는 언젠가 갈 것이다. 당분간은 미련을 버리라”며 주키치를 설득했다. 하지만, 주키치가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사랑하는 연인, 캐서린 때문이었다.

 

추수감사절에 인생이 바뀐 주키치

 

주키치가 웨슬리안 대학 시절 입던 유니폼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주키치)

 

벤자민 주키치. LG 외국인 투수다. 2010년 11월 LG 유니폼을 입은 주키치는 지난해 10승 8패 평균자책 3.60을 거뒀다. 올 시즌도 11승 8패 평균자책 3.47을 기록하며 2년 연속 10승 이상, 평균자책 3점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만약 전반기 성적을 후반기까지 이어갔다면 주키치는 15승 이상을 기록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8월부터 9월 9일까지 7경기 연속 무승에 그치며 주춤했다. 반전의 기회는 있었다. 9월 15일 잠실 두산전이었다. 그날 주키치 공엔 힘이 있었다. 두산 타자들도 “올 시즌 가장 좋은 공을 던졌다”며 상대 투수를 칭찬했다. 이 경기에서 주키치는 8경기 만에 승리를 추가했다.

 

한해 농사를 잘 마무리하려던 주키치에게 불운이 찾아온 건 9월 20일 잠실 한화전이었다. 이 경기에서 주키치는 2회 강습 타구에 왼쪽 어깨를 맞고 쓰러졌다. 무사히 이닝을 마무리 했지만, LG 코칭스태프는 선수보호차원에서 3회 투수를 교체했다.

 

주키치와 인터뷰가 예정된 21일은 공교롭게도 그의 2군행이 확정된 날이었다. 유종의 미를 거둬 11월 18일 추수감사절 때 가족과 함께 기쁜 마음으로 한해를 정리하려던 주키치의 계획은 물거품이 될 처지였다. 하지만, 주키치의 아내 캐서린 주키치는 남편의 등을 다독거리며 “당신의 야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위로했다. 주키치도 아내의 위로에 기분이 좋아진 듯 “팀을 위한 내 열정은 전혀 식지 않았다”고 힘줘 말했다.


한화전에서 타구에 맞고 쓰러지는 걸 TV를 통해 봤습니다. ‘큰 부상이면 어쩌나’ 걱정이 되더군요. 당신을 응원하는 LG팬들도 같은 심정이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지금 어깨 상태는 어떻습니까.

 

주키치 : 괜찮아요. 큰 이상은 없어요. 많은 분이 걱정해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웃음).

 

캐서린 : (눈을 크게 뜨며) 저도 처음엔 깜짝 놀랐어요. 어깨에 공을 맞았으니까요. 하지만, 큰 이상이 없다는 걸 알고 안심했어요. 벤은 강한 사람이에요(웃음).

 

불운을 겪긴 했지만, 올 시즌 11승 8패 평균자책 3.47을 기록 중입니다. 지난해보다 성적이 좋아졌어요. 시즌 전 기대했던 목표치를 달성했다고 봐도 좋을까요?

 

주키치 : 글쎄요. 시즌 전 수치로 목표를 정하진 않았어요. 전반기엔 좋았지만, 당신도 알다시피 후반기엔 좋지 않았어요. 그래도 최근 2경기에선 투구가 괜찮았죠. 열심히 노력했다고 자부합니다만, 지금 성적에 만족하진 않아요.

 

외국인 투수로서 2년 연속 10승이면 만족감을 느껴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주키치 : (진지한 표정으로) 전 제가 갖고 싶은 걸 가졌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팀은 그러지 못했어요.

 

조금 있으면 추석입니다. 누구에게나 추석은 한해를 돌아보고, 가족과 함께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는 명절인데요. 미국에도 추석과 비슷한 의미의 추수감사절이 있지요?

 

주키치 : 네, 한국의 추석처럼 미국에서도 추수감사절은 가장 큰 명절이에요.

 

미국에선 추수감사절을 어떻게 보내는지 궁금합니다.

 

주키치 : 한국과 비슷할 거예요. 온 가족이 모여 미국식 명절음식을 나눠 먹죠. 여자들과 아이들은 음식을 차리고, 놀이를 하고, 이야기꽃을 피워요. 남자들은 뻔하죠. 집집이 소파에 앉아 미식축구를 봅니다(웃음).

 

한국의 추수감사절인 추석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나요?

 

주키치 : 솔직히 잘 알진 못해요. 지난해에도 추석이 있다는 건 알았는데, 매일 경기하러 지방에 가다 보니 직접 경험한 적은 없습니다. 그래도 매우 의미 있는 날이라는 건 알아요.

 

당신을 볼 때마다 늘 느끼는 겁니다만, 가족을 정말 사랑하는 것 같아요. 어느 외국인 선수보다 가족사랑이 더 진한 듯해요. 추석을 얼마 남겨두지 않았기 때문일까요. 당신의 가족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특히나 아내 캐서린 씨는 당신이 한국까지 오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알아요.

 

주키치 : 저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가족을 가장 소중히 생각할 거예요. 뭐든 물어보세요(웃음).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났을까 궁금해요.

 

주키치 : 2008년 처음 만났어요. 같은 지역(미네소타)에 살았지만, 그땐 아는 사이가 아니었어요. 그러다 제 친구 소개로 캐서린을 만났죠. (환한 표정으로) 만나자마자 서로 통하는 게 많았어요. 밀고 당기는 것 없이 처음 만난 순간부터 뜨겁게 사랑했습니다(웃음).

 

대부분 남성이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정작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반대일 때가 많아요. 대표적인 예가 접니다. 어때요. 캐서린. 남편 말이 맞나요?

 

캐서린 : 남편과 만났을 때 전 스포츠 리포터였어요. 그래선지 ‘운동선수와는 절대 연애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죠. 벤을 만났을 때도, 처음엔 별다른 느낌이 없었어요. 그걸 알았는지 제게 계속 구애하더군요. 결국 제가 넘어갔죠(웃음).

 

주키치의 심장은 '가족'이란 기름으로 뛴다(사진=도현석 작가)

 

2010년 10월 LG와 입단 계약을 체결했어요. 아직 젊은 나이였는데다 한창 캐서린과 사랑을 나누던 시기라, 한국행을 결심하기까지 많은 고민을 했을 듯싶어요.

 

주키치 : 맞아요. LG와 계약할 당시 전 캐서린과 약혼한 상태도, 결혼을 약속한 사이도 아니었어요. 고민이 많았죠. 하지만, 스포츠 쪽을 잘 아는 캐서린은 늘 제게 “마이너리그는 무척 힘든 무대니까 언제든 좋은 기회가 있으면 놓치지 말고 잡으라”고 조언했어요. 한국행을 결심하는데도, 캐서린의 조언이 큰 힘이 됐습니다.

 

그즈음 추수감사절이 당신의 인생에 큰 변화를 준 것으로 알아요.

 

주키치 : 그해 11월 LG의 플로리다 마무리 캠프에 합류했어요. 코칭스태프가 추수감사절에 맞춰 제게 특별히 1주일 동안 휴가를 줬어요. 고향에 내려가 곰곰이 생각했어요. LG와 계약하면서 경제사정도 나아졌으니 나도 가족을 부양해도 될 것 같더군요. 그래 추수감사절 다음날 캐서린에게 프러포즈했어요(웃음). 그리고 일주일이 지나고 캐서린이 ‘속도위반’을 했다는 걸 알았죠. 와우! 그때부터 모든 게 스피드하게 진행됐어요(웃음).

 

‘속도위반’이라, 음…. (긴장한 듯 물 한 모금을 마시고서) 한국행을 결심했을 때 주키치보다 캐서린의 머릿속이 더 복잡했을 것 같아요.

 

캐서린 : (고개를 끄덕이며) 사실이에요. 남편보다 제가 더 걱정이 많았어요. 전 미국에 직장이 있었고, 그땐 가뜩이나 임신한 상태였어요. 부상당하면 언제 방출될지 모르는 게 야구계 생리라는 걸 잘 알고 있었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새로운 나라에 간다는 건 그래서 제겐 모험이었어요. 정말 여러 가지로 고민이 많았어요.

 

그런데도 남편의 결정을 지지하고, 한국까지 동행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캐서린 : 한국에서 영어강사를 했던 친구들이 있었어요. 제가 한국에 간다니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줬어요.

 

좋은 이야기였나요?

 

캐서린 : 그럼요. 그 친구들이 ‘서울은 정말 살기 좋은 곳’이라고 했어요. 그 말을 듣고 나니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어요. 그래도 여전히 새로운 나라에 대한 두려움은 남아 있었죠. 지금도 두렵냐고요? 전혀요(웃음).

 

가족, 외로움을 이기는 유일한 무기

 

시구를 마친 아내 캐서린을 주키치가 포옹하고 있다(사진=LG)

 

한국 프로야구가 외국인 선수에게 문호를 개방한 건 1998년이었다. 당시 한국 무대를 밟은 외국인 선수들은 자신들의 신세를 ‘소모품’으로 비유했다. 그도 그럴 게 그들을 가리켜 언론은 ‘외국인 선수’ 대신 ‘용병’이라 불렀고, 야구계는 언제든 교체 가능한 대체재로 취급했다. 일부 구단 관계자는 외국인 선수가 조금만 부진하면 손으로 목을 긋는 시늉을 했다. ‘성적이 나쁘면 잘릴 줄 알라’는 뜻이었다.

 

외국인 선수들을 괴롭힌 건 성적 압박감만은 아니었다. 미국과는 전혀 다른 야구 스타일과 동료의 편견도 그들을 힘들게 했다. 무엇보다 그들은 낯선 문화와 외로움을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펼쳐야 했다.

 

변변한 라커룸 하나 없던 야구장에서 외국인 선수들은 바닥에 앉은 채 식사를 해야 했고, 그마저도 낯선 한국 음식뿐이었다. 서울은 그나마 양호했다. 패밀리 레스토랑이 곳곳에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방도시는 달랐다. 그 흔한 스테이크집도 찾기 어려웠다. 특히나 당시만 해도 선수들은 가족을 동반하지 않고 혼자 한국에 오는 경우가 많았다.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눈처럼 쌓였고, 결국엔 야구실력마저 고드름처럼 얼어버렸다.

 

KIA와 두산에서 선수생활을 했던 다니엘 리오스는 “가족이 없을 땐 더그아웃 한쪽에 버려진 배트처럼 처량한 기분을 느꼈다”며 “외국인 선수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가족”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요즘은 다르다. 외국인 선수 대부분이 가족과 함께 산다. 특별한 사유로 가족과 함께 있지 못한 선수들도 1년에 한두 번은 가족이 찾아온다. 구단들도 지금은 가족의 중요성을 깨달아 전폭적인 지원과 배려를 아끼지 않는다.

 

LG가 좋은 예다. LG는 외국인 선수들에 서울 강남에 있는 고급 레지던스를 제공한다. 선수의 동반 가족이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갖은 배려를 아끼지 않는다. 단장부터 영어에 능통해 선수들과 수시로 면담하고, 언제나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하지만, 여전히 외로움은 남아 있다. 특히나 선수 아내가 그렇다. 젊은 나이에 낯선 나라에서 남편을 뒷바라지한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캐서린도 예외가 아니다.

 

주키치 아버지는 구단의 배려로 시구자로 나섰다(사진=LG)

 

남편이 야구장으로 출근하면 캐서린과 라일리 둘만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요. 주로 어떻게 시간을 보낼지 궁금해요.

 

캐서린 : 처음엔 서울 지리도 익힐 겸 걸어 다니기도 정말 많이 걸어 다녔어요. 지하철도 자주 탔죠. ‘오늘은 여기, 내일은 저기’하는 식으로 지하철 투어를 했어요. 그래서 지금은 지하철 타는 법을 모두 익혔답니다(웃음). 아, 더스틴 니퍼트(두산)의 와이프 캐리와도 정말 친하거든요. 캐리와 많은 시간을 함께 했어요. 임신했을 때 캐리와 밥도 함께 먹고, 이야기도 하면서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그래도 외로움은 여전히 남아 있을 것 같아요. 야구선수 아내이고, 특히나 사는 곳이 외국이라면 더하지 않을까 싶어요.

 

캐서린 : 맞아요. 처음 한국에 와서 남편과 떨어져 있을 때 ‘스카이프’로 통화를 많이 했어요. 그래야 외로움을 줄일 수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돌아보면 야구선수 아내는 어차피 외로운 위치인 것 같아요. 외국에 사는 사람이 외로움을 느끼는 것도 당연한 것 같고요. 그래서 요즘은 이 모든 걸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있어요(웃음).

 

주키치 : 라일리가 태어나기 전엔 경기 전에 ‘스카이프’로 아내와 계속 이야기하고, 경기 끝나고 숙소에 들어가서도 몇 시간이고 통화했어요. 통화 마치고 새벽에 잠들 때도 잦았죠. 그런데 라일리가 태어나고선 아내가 아기를 돌봐야 하니까 통화가 30분으로 ‘확’ 줄었어요. 나중엔 안부만 묻다 끊을지 몰라요(웃음).

 

프로야구선수는 가족에겐 높은 점수를 받을 만한 직업이 아니에요. 시즌 중엔 월요일만 쉬고, 항상 오후 1시까지 출근해 10시 이후 퇴근합니다. 시즌이 끝나도 마무리훈련, 스프링캠프, 시범경기 등을 치르느라 밖에 있는 시간이 많아요. 젊은 아내와 아들을 두고 집을 비울 때 당신의 감정이 어떨지 궁금해요.

 

주키치 : 라일리가 조금 크다 보니까 아빠가 원정경기를 떠날 땐 눈치를 채요. 제가 문을 열고 나가면 울고불고 합니다(웃음). 다른 아빠들도 그렇겠지만, 그런 라일리를 보면 무척 마음이 아파요. 아내를 혼자 두고 출근하는 것도 마음이 영 편한 일은 아니에요. 하지만, 팀에서 참 많은 배려를 해주셔서 요즘은 원정경기마다 아내와 라일리를 동반하고 있어요. 그래서 상당히 편해요. 물론 지방도시에 가면 호텔 밖으로 나가도 별로 할 게 없긴 해요. 그래도 가족과 동행한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캐서린과 라일리는 항상 구장에 나오는 것 같더군요. 주키치가 등판하지 않아도 구장을 찾는 것으로 아는데요. 몇몇 선수들은 “관중석에서 가족이 보고 있으면 부담이 커진다”며 구장에 오는 걸 만류하기도 해요. 당신은 어때요?

 

주키치 : 제 경우 그런 부담은 없어요. 그저 아내와 가족이 오면 잘 던지는 장면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만 하죠. 예외가 있었다면 아버지가 오실 때에요. 아버지가 지난해, 올해 2년 연속으로 오셨어요. 아버지는 제 인생 최고의 멘토에요. 제 인생과 야구에 가장 많은 영향을 주신 분이죠. 아버지가 잠실구장에 오실 땐 정말 잘 던지고 싶어서 긴장을 많이 해요. 다행히 오실 때마다 좋은 경기를 보여 드린 것 같아 기뻐요.

 

몇몇 선수처럼 선수 가족들도 “너무 긴장되고, 살이 떨린다”는 이유로 직접 구장에 가는 걸 피할 때가 있어요. 캐서린도 남편이 마운드에 서면 긴장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캐서린 : 아마 남편이 마운드에 있을 때 야구장에서 가장 긴장하는 사람이 바로 절 거예요. 너무 긴장해서 남편이 던지는 걸 보기 힘들 때도 많아요. 하지만, 남편이 마운드에 서 있는 게 자랑스러울 때가 더 많아요. 라일리가 태어나고선 더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어요.

 

라일리가 야구를 좋아하나요?

 

캐서린 : 라일리는 아직 야구를 잘 몰라요(웃음). 미국 어린이들은 야구선수를 꿈꾸고, 메이저리그 선수들을 동경하죠. 라일리도 크면 알게 될 거예요. 아빠가 프로 유니폼을 입고 마운드에 섰다는 게 얼마나 자랑스럽고 영광스런 일이었는지를. 그래선지 요즘 라일리와 함께 야구장에 가서 남편을 보면 감격스럽고, 벅차요.

 

캐서린 주키치가 없었다면 지금의 주키치도 없었을 것이다(사진=도현석 작가)

 

휴일은 어떻게 보내나요?

 

주키치 : 제게 선택권이 있다면 온종일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소파에 누워 TV를 보거나 영화를 틀거나 컴퓨터 게임을 하거나 낮잠을 잘 거예요. 하지만, 와이프가 선택권이 있기 때문에 늘 따라다녀야 합니다. 아내는 휴일 아이디어가 넘쳐흘러요. 한번은 1년 스케줄표를 봤다가 깜짝 놀랐어요.

 

왜요?

 

주키치 :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달력에 적힌 휴식일마다 ‘이날은 여기, 저날은 여기’하는 식으로 온통 스케줄을 적어놨지 뭐에요. 그걸 보고 너무 놀라서 “내가 여길 다 어떻게 가느냐”고 묻기까지 했어요. “난 도저히 다 못 가니까 우리 부모님, 당신 부모님 모시고 가라”고 했죠(웃음).

 

아, 국경을 초월한 공감이란 게 바로 이런 것이군요. 남자에게 휴일은 동면에 들어가는 시간이지만, 여자에게 휴일은 동면에서 깨는 날인가 봐요.

 

주키치 : 그래도 덕분에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 수 있었어요.

(LG 외국인 선수 담당 통역 김정덕 씨는 “주키치 부부는 휴일만 되면 바쁘게 움직인다”며 “한국사람보다 더 열심히 명소를 찾아다닌다”고 귀띔했다. 이는 주키치 부모도 같다. 주키치 부모가 아들을 보려고 방한했을 때 LG는 구단 차원에서 서울 여기저기를 안내하려 했다. 그러나 주키치 부모는 이미 자신들이 갈 곳을 정해놓은 상태였고, 통역의 도움 없이 자유롭게 명소를 둘러봤다.)

 

지금껏 가본 명소 가운데 어디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주키치 : 정말 많아서 고르기 어려운데요. 음, 전 남이섬이 무척 좋았어요. 사진 찍는 게 취미인데 남이섬엔 정말 사진 찍을 게 많았어요. 정신없이 셔터를 눌렀죠(웃음). 경복궁도 기억에 남아요.

 

캐서린은 어떤가요?

 

캐서린 : 전 역사에 관심이 많은 편이에요. DMZ(비무장지대)를 두 번 다녀왔는데, 역사의 현장을 봤다는 게 큰 의미가 있었어요. 전 DMZ와 경복궁이 기억에 남아요. 아, ‘겨울연가’의 배경이었던 남이섬도 좋은 곳이었어요.

 

외국인 선수와 가족에게 물으면 ‘한국 음식에 적응하는 게 힘들다’는 이야기를 자주 해요. 사실 외국살이에서 가장 힘든 게 음식문제가 아닐까 싶은데요. 가뜩이나 한국엔 매운 음식이 참 많아요.

 

주키치 : 음식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아요. 오징어, 낙지, 번데기만 빼면 다 잘 먹어요(웃음). 물론 처음엔 힘들었어요. 전혀 한국 음식을 먹지 못했으니까요. 그러다 선수단을 따라다니며 조금씩 한국 음식에 적응했어요. 지금은 한국 음식을 즐겨 먹는 편이에요. 한국 사람처럼 김치도 잘 먹고, 한국음식에 중독돼서 집에서 뭘 먹을 때 항상 ‘핫 소스’를 뿌립니다(웃음).

 

캐서린 : (주키치를 바라보며) 이 사람은 정말 매운 맛에 적응한 것 같아요. 전 아직 매운 맛에 적응하지 못했어요. 그래도 한국 음식은 다 맛있어요. 불고기, 삼겹살 모두 최고에요(웃음). 물론 저도 오징어, 낙지, 번데기는 먹지 못해요.

 

주키치 : 아, 한 가지 불편한 게 있긴 해요.

 

뭔가요?

 

주키치 : 아내나 저나 패밀리 레스토랑엔 거의 가지 않아요. 한국에 있으니까 한국 문화도 익힐 겸 가능한 한식집에 가죠. 그런데 한식집엔 영어로 된 메뉴판이 거의 없어요. 그 바람에 내가 뭘 먹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먹을 때가 많아요(웃음).

 

서울살이에 불편한 점은 없나요?

 

주키치 : 집이 강남에 있어요. 잠실야구장까지 가는데 주로 지하철이나 택시를 이용하죠. 그런데 지하철은 사람들로 ‘꽉’ 찰 때가 많아요. 절 알아보시는 팬도 많고요. 간혹 난감할 때가 있죠. 택시도 강남에서 잠실까진 ‘꽉’ 막히는 구간이라, 시간이 오래 걸릴 때가 많아요.

 

캐서린 : 미국 주택엔 뒤뜰이 있어요. 공원도 많아서 아이들이 맘껏 뛰어놀죠. 하지만, 우리가 사는 강남은 도심이라, 라일리가 맘껏 놀 수 있는 공간이 부족해요. 그게 유일한 아쉬움이에요.

 

반대로 서울살이의 좋은 점도 있나요?

 

주키치 : 좋은 점이 훨씬 많아요. 가장 좋은 건 한국 야구팬들의 열성적인 응원문화에요. 미국과는 정말 달라요.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다른가요?

 

주키치 : 당신도 알듯이 미국에선 선수가 못하면 엄청난 야유를 받아요. “꺼져버려!”하는 소릴 듣기도 하죠(웃음). 하지만, 한국은 아니에요. 선수가 조금 못해도 ‘최고’라고 칭찬해줘요. 팬들의 충성도와 친절함에 놀랄 때가 많아요. 늘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캐서린 : 전 서울의 대중교통 시스템에 매료됐어요. 지하철을 비롯한 대중교통은 미국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좋아요. KTX도 매우 편하고요.

 

아내의 출산을 함께 하지 못했던 이유

 

아내 캐서린(사진 왼쪽)과 주키치(사진 오른쪽)이 아들 라일리의 얼굴에 입을 맞추고 있다(사진=도현석 작가)

 

LG의 배려 덕분일까. LG 외국인 선수들의 팀 사랑은 각별하다. 주키치 역시 LG 사랑이 넘친다. 그러나 외국인 선수의 거취는 소소한 감정과 고마움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프로선수이기에 더 나은 조건과 환경을 제시하는 리그로 옮기게 마련이다. 많은 외국인 선수가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둥지를 옮긴 것도 같은 이치다. 시즌 말미 ‘일본 프로야구 오릭스 버펄로스가 주키치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과연 내년, 주키치는 어디에서 가족과 함께 추석을 보낼까.


많은 LG팬은 당신이 내년에도 핀스트라이프 유니폼을 입길 바랍니다.

 

주키치 : 저도 LG 팬이 좋아요. 그분들에게 사랑받는 게 정말 기쁩니다. 한국에서의 시간도 무척 좋았고요. 아직 시즌 중이라, 내년 이야기를 하는 건 섣부를 수 있는데요. (잠시 말문을 닫았다가) 저는 계속 LG에서 뛰고 싶은 마음이 강해요.

 

캐서린 : 남편과 그런 이야기를 자주 해요. ‘만약 한국을 떠나야 한다면 정말 아쉽고, 매우 힘든 결정이 될 것’이라고요. 저 역시 남편이 계속 LG 팬들의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열성적인 팬들은 지구상 어디에서도 만날 수 없으니까요.

 

세상의 영원한 진리 가운데 하나가 ‘세상에 영원한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언젠가 한국을 떠나는 날이 올 텐데요. 시간이 흘러 한국을 떠올린다면 어떤 이미지로 기억될까 궁금합니다.

 

주키치 : 외국에서 아내, 아기와 함께 새로운 경험을 한다는 건 제겐 축복이에요. 먼훗날에도 그렇게 생각할 거예요. (눈을 가늘게 뜨고서) 만약 한국을 떠난다면 이곳의 야구문화만은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한국 야구문화는 미국과는 정말 달라요. 팀이 아무리 못해도, 선수가 부진해도 팬들은 1회부터 9회까지 응원하고, 춤추고, 노랠 불러요. 미국에선 상상할 수도 없는 광경이죠. 충성심 높고, 즐길 줄 아는 한국야구팬들을 우리 가족은 영원히 기억할 겁니다.

 

여담입니다. 아들 라일리가 크면 야구선수를 시킬 생각이세요?

 

주키치 : 글쎄. 모르겠어요. 욕심 같아서 야구선수가 됐으면 좋겠는데.

 

캐서린 : (남편의 말이 막으며) 아니에요. 지금 남편의 이야기는 농담이랍니다(웃음).

 

주키치 : 하하, 그래요. 순전히 제 생각일 뿐이에요. 아내와 농담삼아 “라일리는 운동선수보다 예술가가 될 것 같다”는 이야기를 자주 해요.

 

예술가요?

 

캐서린 : 라일리 할아버지가 기타 치는 걸 상당히 좋아하세요. 할아버지가 기타만 치면, 어디서 노랫소리만 나오면 라일리는 거기에만 집중해요. 아무래도 음악 쪽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아요(웃음). 남한테 폐 안 끼치고 잘할 수만 있다면 뭐든 도와주고 싶어요.

 

주키치는 LG 팬들을 사랑한다. 그런 그를 LG 팬들도 내국인 선수 이상으로 사랑한다(사진=LG)

 

추석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새삼 가족의 의미가 각별하게 느껴지는 시점인데요. 주키치 당신에게 가족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주키치 : 제겐 가족이 최우선이에요. 제 모든 것이죠. 아마 누구에게나 그럴 겁니다. 특히나 저처럼 외국에서 뛰는 선수에겐 가족이 가장 큰 힘이에요. 그걸 팀에서도 알기에 원정경기마다 아내와 라일리의 동행을 허락해주고 있어요. 물론, 제 가족은 여기 있는 아내와 라일리만은 아닙니다.

 

어떤 의미인가요?

 

주키치 : 미국에선 첫 아이가 태어날 때 남편이 아내 곁에 없다는 건 엄청난 슬픔이에요. 지난해 전 그 슬픔을 경험했어요. 출산을 아내 곁에서 함께 하지 못하는 대신 팀 동료들과 함께 있기로 결정했습니다. 이유는 하나였어요. 한국야구와 야구문화를 존중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팀원들도 제 가족이란 생각을 했기 때문이에요.

 

아내도 이해하던가요.

 

주키치 : 상황을 설명하자 아내도 제 결정을 존중해줬어요.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아내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에요.

 

캐서린 : 전 남편을 이해했어요. 남편이 얼마나 고민했을지 잘 아니까요. 결국 남편은 팀원들과 함께 하며 팀에 빠르게 적응했고, 부상 없이 나름 좋은 성적으로 시즌을 마칠 수 있었어요. 남편이 제 옆에 없을 때 실망할 사람은 저 한 명이지만, 만약 남편이 제 곁에 있었다면 수많은 사람이 실망했을 거예요. (환하게 웃으며) 프로선수의 진정한 가족은 동료와 팬일 테니까요.

 

좋은 말이군요. 마지막으로 추석을 맞아 당신과 당신 가족의 안녕과 행운을 비는 팬들에게 추석 인사 한마디 부탁합니다.

 

주키치, 캐서린 : 뜻깊은 추석을 가족과 함께 의미 있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올 시즌이 끝나도 LG를 계속 사랑해주세요. 물론 우리 가족도 항상 응원해주세요. 여러분의 사랑이 우리 가족에겐 최고의 추석 선물입니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