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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희의 야구인] 유리 어깨를 테크닉으로 극복한 유지현

라데츠(radetz) 2013. 6. 5.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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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G 명유격수였던 유지현(사진=LG)

 

 

5월 어느 날이었다. 고교야구 경기를 보러 목동구장에 갔다. 모 팀 스카우트와 함께 경기를 관전했다. 그는 경기를 보는 내내 연방 한숨을 내쉬었다. “좋은 투수는 고사하고, 좋은 포수, 좋은 유격수가 보이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다. 그 가운데 어떤 포지션의 유망주가 가장 부족한지 물었다.

 

“유격수가 아닐까 싶어요. 강한 어깨의 유격수가 태부족하거든요. 어깨가 좀 좋다 싶으면 투수만 하려고 하니….”

 

유격수 유망주가 태부족한 건 어제오늘 일만이 아니다. 따지고 보면 어깨만 강하다고 훌륭한 유격수가 되는 것도 아니다. 약한 어깨를 다른 부분에서 보충해 리그 ‘넘버 원’ 유격수가 된 이도 있다. 그 스카우트가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물었다.

 

“LG 유지현 코치 말하는 겁니까?”

 

# 유지현(42). LG 수비코치다. 현역 시절엔 명유격수로 이름을 날렸다. 1994년 한양대를 졸업하고 LG에 입단하자마자 주전 유격수를 꿰찼다. 결과도 좋았다. 그해 유지현은 타율 3할5리, 15홈런, 51타점, 51도루를 기록하며 LG를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다. 신인왕 수상은 덤이었다.

 

그는 이후에도 안정된 수비와 높은 출루율 그리고 많은 도루로 ‘LG 전성시대’를 이끌었다. 하지만, 그의 앞엔 항상 ‘거대한 두 벽’이 버티고 있었다. 해태 ‘천재 유격수 이종범’과 자신의 약한 어깨였다.

이종범이 해태에서 뛰던 1997년까지 유지현은 골든글러브와는 인연이 없었다. 골든글러브 투표인단은 이종범의 이름만 보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에게 투표했다. 그만큼 이종범은 한국 프로야구 최고의 슈퍼스타였다. 그래서일까. 유지현은 ‘이종범’이라는 거대한 벽은 의식하지 않았다. 자신이 컨트롤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정작 그가 번번이 좌절했던 ‘거대한 벽’은 약한 어깨였다.

 

“현역 시절 어깨 때문에 고민이 많았습니다. 약한 어깨 때문에 송구력이 좋지 않다는 평을 자주 들었어요. 돌아보면 프로에서만 그랬던 건 아니었던 것 같아요. 아마추어 때부터 어깨는 항상 제 고민거리였습니다.”

 

그가 처음부터 어깨가 약했던 건 아니었다. 반대였다. 충암고 1학년 때까지 투수와 유격수를 겸할 만큼 어깨가 강했다. 그러던 1988년. 서울올림픽의 열기가 대한민국을 뒤덮던 그즈음. 유지현의 어깨는 반대로 차갑게 식어갔다.

 

“고 2때 서울올림픽이 열렸어요. 원체 국가적 대사가 열리다 보니까 고교야구대회에 한시적인 변화가 있었어요. 원래 서울시 예선 성적만 좋으면 전국대회에 모두 출전할 수 있었는데, 그해엔 올림픽 때문에 지역예선없이 서울 소재 고교야구팀 절반은 대통령배, 나머지 절반은 청룡기에만 출전할 수 있었어요. 충암고는 청룡기에만 출전해야 했기에 그 한 대회에서 반드시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무척 심했습니다.”

 

전국대회를 앞두고 유지현은 훈련에만 매달렸다. 그러던 중 하루는 성남고와 연습경기를 치렀다. 유지현의 포지션은 유격수.

 

“경기 도중 성남고 1루 주자가 2루 도루를 시도했어요. 그런데 슬라이딩을 하지 않고 서서 들어오더군요. 무의식적으로 공을 잡아 태그아웃을 시도하려 했는데, 그제야 달려오던 1루 주자가 보였어요. 순간 오른손을 뻗어 충돌을 막으려 했죠. 그런데 그때 오른 손목뼈에 그만 금이 가고 말았습니다.”

 

병원에선 “4주 동안 깁스를 해야 뼈가 붙는다”는 진단 결과를 들려줬다. 그때 푹 쉬었다면 유지현은 차후 ‘유리 어깨’란 소린 듣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17살 유지현의 생각은 달랐다. 그가 뛰어야 학교가 전국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동료들이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그는 욕심을 부렸다. 깁스 대신 훈련을 선택했다.

 

다음날 대구에서 열리는 대붕기대회에 참가한 유지현은 경기 전 캐치볼을 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공이 날아가지 않았다. 팔도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손목에서 극도의 통증이 느껴졌다. 그는 팔 상태가 좋아질 때까지 유격수에서 2루수로 포지션을 바꿨다. 그러나 그게 실수였다. 대붕기 첫 경기에서 충암고는 충격의 패배를 당했다. 2루수 유지현의 실책 때문이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유지현은 어깨에도 부상을 당했다.

 

“팔목이 아파 어깨로 송구했던 게 결국 탈이 난 것 같아요. 거기다 그땐 지금 같은 재활 프로그램도 없었어요. 한양대에 진학할 때까지 계속 팔이 좋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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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역 시절 유지현 코치의 별명은 '꾀돌이'였다. 야구센스가 뛰어나고, 영리한 플레이를 펼친 까닭이다. 하지만, 그 꾀가 프로

에서 살아남기 위한 고육지책이었음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사진=LG)

 

# 한양대 진학 이후. 유지현의 팔 상태는 조금씩 나아졌다. 그는 다시 ‘수준급 내야수’란 찬사를 들었다. 그는 부상 재발을 우려해 과욕을 자제했다. 그러던 대학교 3학년 때. 다시 위기가 찾아왔다. 이번엔 방심이 화를 불렀다.

 

“그즈음 한국 대학선발팀이 미국을 순회하며 미국 대학팀들과 친선경기를 벌였어요. 하루는 버펄로에서 경기를 벌이는데 날씨가 꽤 추웠어요. 경기 전 미국 대학팀이 훈련하고, 다음이 우리 차례였죠. 미국 팀이 연습하는 동안 햄버거로 점심을 떼우고 있었어요. 그런데 주최 측에서 갑자기 경기 시작 몇 분 전에 우리 보고 ‘빨리 나가서 수비훈련을 하라’고 하더군요. 허겁지겁 나갔죠. 캐치볼 할 시간도 없었어요. 돌아보면 그땐 다들 젊어선지 몸을 푼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 과정인지 잘 알지 몰랐던 것 같아요. 그라운드에 나가자마자 펑고를 받고 1루에 공을 던지는데 팔꿈치에서 ‘뚝’ 하는 소리가 들리더군요. 네, 팔꿈치에 탈이 나고 만겁니다.”

 

팔꿈치를 다친 유지현은 그해 재활에만 매달렸다. 진로가 결정되는 대학 4학년 땐 부상 여파로 별다른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유지현은 초조했다. 그런 유지현을 바라보는 연고지 구단 OB(두산의 전신), LG도 초조하긴 마찬가지였다. 두 구단은 내심 유지현을 1차 지명자로 원했지만, 대학 졸업반 때의 성적과 팔 부상 전력 때문에 장고를 거듭해야 했다.

 

“프로에 오기 전 절 두고 말이 많았어요. ‘유지현이 과연 유격수로 뛸 수 있겠느냐’는 이야기들이었어요. 솔직히 그땐 송구를 해도 1루까지 공이 가지 않았어요. OB에서 절 1차 지명하지 않은 것도 무리는 아니었습니다. 여기저기서 듣자니 LG에서도 절 ‘지명해야 하느냐, 마느냐’를 두고 고민이 심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팀 사정상 절 포기할 수도 없었대요. 그때 송구홍 선배가 3루수를 보다가 유격수를 맡았는데 1994년에 입대를 해야만 했거든요. 그렇게 LG가 고민하고 있을 때 이광환 감독님께서 ‘국가대표를 5년이나 한 친구면 뭐가 있어도 있다’는 말씀으로 제 지명을 추천했다고 하더군요. 결국 LG가 절 1차 지명하면서 프로에 입문하게 됐습니다.”

 

당시 OB 스카우트였던 양승호 전 롯데 감독은 “유지현 때문에 각서까지 받았다”고 회상했다.

 

“원래 난 유지현을 잡고 싶었어요. 어깨가 걸림돌이었지만, 정말 야구센스가 뛰어난 친구였거든요. 하지만, 코칭스태프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내야수보단 즉시 전력감 좌완 투수가 필요하다’고 요청했어요. 결국 코칭스태프의 요청에 따라 유지현 대신 류택현을 선택했습니다. 혹시나 나중에 구단에서 딴소리 할까 봐 당시 OB 사장님한테 ‘유지현이 LG에서 잘해도 절대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각서를 써달라고 했어요. 솔직히 제가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각서를 요구했던 건 아니었어요. 사장님께서 ‘스카우트가 각서를 요구할 만큼 이 선수가 그리 대단해? 다시 생각해볼까’하는 생각을 하셨으면 하는 마음에서 각서를 요구했던 거였어요. 그만큼 유지현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게 사실입니다.”

 

양 전 감독은 유지현을 놓친 게 아쉬웠으나, 그해 스프링캠프 때만 해도 야구계는 OB의 결정이 옳았다고 믿었다. 유지현의 훈련량이 다른 내야수에 비해 눈에 띄게 적었기 때문이다.

 

“원래 신인 야수들은 훈련량이 많아요. 야간훈련에도 빠짐없이 나갑니다. 하지만, 전 저녁이면 야수조가 아닌 투수조에서 투수들과 함께 어깨 보강훈련을 받았어요. 밤마다 배트를 휘두르는 대신 튜빙같은 걸 하면서 어깨 단련에만 신경 썼죠.”

 

유지현이 신경 쓴 건 어깨 보강훈련만이 아니었다. 보강훈련을 빠짐없이 해도 어깨는 예전의 강견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어깨 통증도 '좋았다, 나빴다'를 반복했다. 하지만, 포기할 순 없었다. ‘프로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더해지며 유지현은 약한 어깨를 보충할 그 무언가를 찾아야했다. 결국 그가 찾아낸 어깨 보강책이 바로 테크닉이었다.

 

“타구가 날아오면 어떻게든 그걸 잡아 1루까지 던져 아웃을 잡아야 했어요. 헌데 어깨 상태만 봐선 1루까지 제대로 송구하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좌절만 할 순 없었어요. 프로에서 살아남으려면 단점을 극복할 장점을 찾아야 했어요. 그때 찾은 게 테크닉입니다. 사실 어릴 때부터 몸놀림은 다른 선수들보다 좋았어요. 충암고 시절 하루에 펑고 300개씩을 받으면서 다른 선수보다 풋워크도 좋은 편이었고요. 약한 어깨를 극복하기 위해선 남보다 수비영역을 넓히고, 한발 앞으로 나가 한박자 빨리 타구를 잡고, 빨리 송구자세를 취하며, 정확히 던지는 게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프로 시절엔 늘 그런 마음가짐으로 플레이했던 것 같습니다.”

 

2004년 현역에서 은퇴할 때까지 유지현은 자신의 말처럼 플레이했다. 화려함보단 안정을 선택했고, 강한 송구보단 빠른 포구와 정확한 송구를 지향했으며, 감(感)보단 데이터와 타자의 성향에 따라 수비 위치를 결정했다. 잘 고장나고, 부족한 송구력 때문에 '유리 어깨'란 소릴 듣기도 했지만, 유지현은 후천적 노력으로 1998, 1999년 2년 연속 골든글러브 유격수 부문 수상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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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시절 유지현의 등번호를 보며 많은 LG팬이 열광했다. 당시 열광하던 팬들이 요즘 들어 하나 둘 야구장을 찾고 있다(사진=LG)

 

# ‘LG의 영원한 유격수’로 남을 것 같던 유지현은 2002년 2루수로 전향한다. 그도 아쉬웠다. 하지만, 그는 1988년의 기억을 떠올리며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2002년 1월 팔꿈치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았어요. 그 바람에 2002년 5월 중순까지 재활에만 매달렸습니다. 5월 하순 팀에 돌아왔지만, 유격수로 뛰다 얼마 지나지 않아 2루수로 젼환해야 했어요. 네, 역시 팔 상태가 좋지 않았던 게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실망하거나 낙담하진 않았어요. 그저 경기에 뛸 수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고맙고, 행복했습니다.”

 

2002년 6월 초까지 LG의 팀 성적은 7위였다. 그러다 유지현이 2루를 맡기 시작하는 6월 중순부터 4위권으로 올라섰다. 결국 그해 LG는 시즌 4위로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하고, 악전고투 속에 한국시리즈까지 올랐다.

 

“8월 초까지 5위를 유지하고 있었어요. 그땐 LG가 4위 안에 들 거라곤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한 40경기 정도 앞두고서부터 선수들도 깜짝 놀랄 만큼 경기가 마음먹은 데로 풀려갔어요. 시쳇말로 턱걸이로 4위 안에 들었죠. 예상하지 못한 포스트 시즌 진출이어선지 선수들 모두 포스트 시즌을 보너스 게임이라고 생각했어요. 정말 편하게 즐기면서 경기를 치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덕분에 한국시리즈까지 오르고, ‘아름다운 2위’란 소릴 들으며 준우승을 차지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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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들의 타격훈련을 도와주고 있는 유지현 코치(사진=LG)

 

# 33살의 젊은 나이로 은퇴한 유지현은 이제 42살의 코치가 됐다. 그가 현역에서 은퇴하고 10년 가까이 LG는 포스트 시즌에 오르지 못했다. LG 팬들은 ‘제2의 유지현’이 나와 팀을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이끌기를 바란다. 과연 LG의 전성시대는 다시 도래할 수 있을까.

 

“겨우내 마무리 훈련부터 시범경기까지 선수들도 그렇고, 코칭스태프도 김기태 감독님 지휘 하에 많은 준비를 했습니다. 시즌 초 다소 부진했지만, 최근엔 베테랑 이병규가 1군에 합류하면서 선수들의 하려는 의지가 더 강해졌어요. 올 시즌 좋은 승부를 펼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팬 여러분도 끝까지 응원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꼭 좋은 성적으로 보답드리도록 저부터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유지현은 현 LG 유격수 오지환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전망을 빼놓지 않았다.

 

“(오)지환이는 누구보다 올 시즌 준비를 잘한 선수에요. 시범경기에서 타격이 부진한 통에 시즌 초 수비에서 다소 불안감이 보였던 게 사실이긴 합니다. 그러나 시즌을 치를수록 수비가 한결 나아지고 있습니다. 저보다 뛰어난 재능을 갖춘 선수인 만큼 열심히 응원해주시면 꼭 좋은 결과를 낼 것으로 확신합니다.”

 

LG의 최근 흐름이 좋다고 4강 진출을 예상하기엔 이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건 LG가 과거의 유지현처럼 절박함 속에서 새로운 뭔가를 찾으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투혼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 시도와 도전이 성공을 거둔다면 LG는 2002년 유지현의 기억처럼 또 한 번의 보너스 게임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