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해까지 백수였다. '좌절하지 말자, 포기하지말고 버티자'고 추석날 보름달 보며 빌기도 빌었다. '절박하면 통한다는데…' 말이 쉽지, 고양 원더스에서 절박한 사람이 어디 나 하나뿐이던가. '야신'은 알고보니 '지옥에서 온 야구의 신'이더라. 김성근 감독님의 지옥훈련을 온몸으로 받아내면서 '프로 가기 전에 쓰러져 죽겠구나' 싶은 날들이 기약없이 이어졌다.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내야수 홍재용, 9월 7일 두산 입단)
#2. 올해는 직장을 얻었다. 이번 추석에는 야구장에 있을 것이다. 추석날 집에 있지 않고 경기를 치르는 것은 고등학교때 이후 처음인 것 같다. 정말 기쁘다. 모든 것이 새롭다. 프로의 맛이 어떠냐면, 유치원에 다니다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기분이랄까. '야구는 배우는 것이 끝이 없구나'하고 느낀다. 부모님이 이제껏 뒷바라지 하시느라 야구장에 한번도 못오셨는데, 올시즌 끝나기 전에 꼭 모시고 싶다. (내야수 김영관, 8월 21일 LG 입단)
고양 원더스 출신의 LG 내야수 김영관이 지난 25일 문학 SK전에서 경기 전 배팅 훈련을 소화하고 있다. 김영관은
지난 21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롯데전에서 역전 2타점 적시타로 성공적인 프로 데뷔전을 치러 주목을 받았다.
올해 김성근 감독이 이끄는 독립야구단 고양 원더스 출신 5명이 프로구단에 입단했다. 이른바 '원더스 5형제'. 1호는 좌완투수 이희성(27)이 지난 7월 6일 LG 유니폼을 입으면서 첫 테이프를 끊었고, 2호는 내야수 김영관(24)이 지난 8월 21일 LG로 뒤따랐다. 그 다음날 외야수 강하승(23)이 KIA 품에 안겨 3호가 되었고 이틀 뒤인 8월 24일 외야수 안태영(27)이 넥센으로 가서 4호가 되었다. 그리고 지난 7일 두산에 신고선수로 '합격'한 내야수 홍재용(23)이 마지막 5호다.
1호 이희성과 2호 김영관은 프로에 오자마자 1군 데뷔를 맛보았고 3,4,5호는 프로 2군생활에 적응하느라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이희성은 LG입단 20여일만이었던 7월 25일 잠실 두산전에 2이닝 1안타 1삼진 무실점 피칭을 선보이며 프로 첫 무대에서 공 21개로 자신의 존재감을 알렸다. 올시즌 3경기 4.2이닝 무실점 방어율 0의 기록을 남겼다. 2호 LG맨 김영관은 지난 21일 잠실 롯데전에 2루수 겸 9번타자로 선발출장해 프로 첫 안타를 결승타로 만드는 행운을 안았다. 4회 2사 만루서 내야안타로 2타점을 작성하면서 팀에 역전을 안겼던 것. 김영관은 현재 1군에서 뛰고있는 유일한 원더스 출신 선수다.
이들이 프로야구 유니폼의 소중함을 담아 써내려가고 있는 '희망일기'는 한가위 보름달보다 밝디 밝다. 오늘 쓰는 희망일기가 내일의 성공일기가 되길, '5형제'는 올 추석에 또다시 소원을 빌 것이다.
◇원더스에서 '오늘만 버티고 내일 그만두자'는 마음으로
안태영(넥센)은 다른 동료들보다 몇배는 더 힘들었다. 6년동안 야구를 쉬었던 탓에 이미 선수의 몸이 아니었다.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오늘만 버티고 내일 그만두자'는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넘겼고, 잃어버렸던 야구를 다시 느끼게 되면서 차츰 희망을 키워나갔다.
김성근 감독과 지옥훈련을 하면, 절박함이 절로 생긴다고 했다. 홍재용에게는 두산 입단하기 바로 한달 전이었던 8월이 가장 큰 고비였다. 김 감독이 홍재용만 따로 남겨서 1대1 훈련을 혹독하게 지도했던 것. 이 악물며 참고 뛰었던 홍재용은 "감독님이 큰 선물(두산 입단)을 주시려고, 더 독하게 훈련시켰던 것 같다"고 말했다. 원더스에 있는 동안 그의 체중은 8kg 빠졌는데, 그야말로 살이 안빠질수 없는 훈련량이었다.
김영관도 힘들긴 마찬가지였지만, 꿈을 위해서라면 훈련도 즐거운 일과였다. 학창시절 유격수, 원더스에서는 2,3루수를 맡았는데 LG 입단할 무렵 김성근 감독으로부터 "이제 최정의 '최'자 정도까지는 되었다"는 말을 들었다. 그 순간, 김영관의 가슴속에서 자신감이 꿈틀거렸다.
독립 야구단 고양 원더스에서 최초로 프로구단인 LG에 입단한 이희성이 지난 7월 25일 1군에 등록된 뒤 두산전 6회말에
등판해 호투하고 있다.
◇첫발에 미끄러졌던, 싸늘하게 버림 받았던 아픔
이희성은 대구고등학교, 성균관대학교를 졸업한 뒤 2011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넥센에 4라운드(전체 30번) 지명을 받았다. 대학시절 18승 5패(방어율 1.71)로 맹활약하면서 세계대학야구선수권대회에 국가대표로 뽑힌 이력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1군 경기에 발 한번 디뎌 보지 못하고 방출됐다. 이후 원더스를 발판삼아 LG에 재입성하는데 성공했다. 지난 7월 25일 잠실 두산전에 첫 등판했던 이희성은 "야구는 어디에서 하든 똑같다고 생각한다. 항상 게으름 피우지 말고 열심히 해서 팀에 보탬이 되고, 유니폼을 오래 입는 선수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안태영은 선린인터넷고를 졸업한 뒤 2004년 드래프트를 통해 2차 7번으로 삼성에 입단했지만, 입단 2년만에 2005년 시즌이 끝난 뒤 방출당하고 말았다. 방출된 뒤 헬스 트레이너와 사회인 야구코치 및 심판을 하면서 야구의 끈을 놓지않고 이어갔다. 안태영은 "포기할 일이었으면 야구를 시작도 안했다"면서 스스로를 다잡아 나갔다.
고양원더스 출신 두산 내야수 홍재용.
◇프로행, 꿈인가 생시인가
김영관은 초등학교때부터 유지현, 서용빈의 열렬한 팬이기에 늘 LG의 줄무늬 유니폼에 대한 동경을 품어 왔었다. LG 유니폼을 처음 받았던 날, 숙소에서 혼자 유니폼을 입어보며 거울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좋아했을 정도. 항상 잠실구장 만원관중 앞에서 야구를 하는 것이 그의 꿈이었다. 학창시절, 동생과 함께 야구를 했지만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았던 탓에 결국 동생이 형을 위해 야구를 포기했고, 김영관에게는 '평생 동생을 도와줘야겠다'는 마음의 짐이 생겼다. 그는 2008년 프로 지명을 받지 못하자, 1년간 아르바이트를 하며 동생 뒷바라지를 하다가 지난해말 동생과 함께 고양 원더스의 문을 두들겼다. 올초 동생은 어깨부상으로 결국 야구를 그만두었다.
먼저 LG로 간 김영관은 평소 친했던 홍재용이 '잠실 이웃구단' 두산에 입단한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했다. 홍재용은 두산에 '합격'된 것이 믿어지지 않을만큼 기뻐서 자신의 볼을 꼬집어 봤다고 했다. 원더스에서 2년안에 승부를 내자고 마음 먹고 있었는데, 올해 프로팀에 가게 될 줄 꿈도 꾸지 못한 일이었기 때문. 그때 김성근 감독의 말 한마디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가기 싫으면 남아라". 이에 홍재용은 화들짝 놀라서 얼른 인사하고 감독실을 나왔다고.
망망대해, 한 척 한 척 배를 띄우듯, 김성근 감독은 자식같은 5명을 프로의 바다로 보내면서 "실패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존재가 되라"는 등대같은 인생의 지침을 남겼다.
고양 원더스 김성근 감독.
◇김성근 감독의 평가.
●이희성 = 롯데 이승호와 비교했을 때, 구위는 떨어져도 스트라이크 잡는 능력은 한수 위. 변화구 제구력 좋고, 직구가 묵직한 편.
●김영관 = 타고난 자질이 좋고, 맞히는 능력이 좋다. 내야 전 포지션 수비가능. 팀에서 어떻게 쓰느냐가 관건.
●안태영 = 힘이 가장 좋다. 올해 원더스 한경기 3홈런 첫 달성자. 타격은 크게 손볼 데 없었고 타석에서 차분함 유지해야 성공.
●강하승 = 발빠른 외야수. 대학때 파워히터로도 활약. 수비시 송구동작 보완해 중견수로 활용.
●홍재용 = 장기는 수비와 발. 경험 쌓으면 리드오프로 성장 가능성. 야구근성 투철함. 대주자, 대수비로 즉시전력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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