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 1년 뒤에는 여기서 못 보고 TV로 보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입담 좋기로 소문난 차명석(43) LG 투수코치가 웃었다. 후반기 들어 호투를 이어가고 있는 외국인 투수 레다메스 리즈(29)가 차 코치의 엔돌핀이다. 그러나 마냥 유쾌한 웃음은 아니었다. 너무 잘하면 오히려 더 큰 무대로 나갈 수 있다는 불안감 탓이다.
리즈의 변신이 눈부시다. 리즈는 24일 문학 SK전에서 6⅓이닝 6탈삼진 1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됐다. 시즌 4승째. 사실 4승 달성은 뒤늦은 감이 있다. 리즈는 최근 6경기에서 모두 퀄리티 스타트(선발 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를 기록했을 정도로 컨디션이 좋았다. 그러나 동료들의 지원을 받지 못해 번번이 승리의 기회를 날렸다. 그런 불운을 깨끗하게 씻어내는 승리라 의미도 남달랐다.
리즈의 2012년은 극과 극이다. 시즌 초반에는 너무 부진했다. 팀의 마무리로 낙점됐지만 고질적인 제구난으로 제 몫을 못했다. 구원으로 나선 7경기 성적은 2패5세이브 평균자책점 13.50으로 최악이었다. 4월 13일 잠실 KIA전에서는 연속으로 16개의 볼을 던지며 팬들을 공황상태로 빠뜨렸다. 결국 쫓겨나듯이 선발로 돌아왔지만 지난해 11승 투수다운 면모를 보여주지 못했다. “한국 생활은 올해로 끝나는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왔다.
그러나 후반기에는 완전히 다른 투수가 됐다. 후반기 11경기에 선발로 나선 리즈의 평균자책점은 2.78에 불과하다. 게다가 시즌 막판으로 갈수록 힘을 내고 있다. 9월 4경기에서는 27⅓이닝을 던지며 0점대 평균자책점(0.99)을 기록 중이다. 24일 경기도 최고구속 161㎞의 강속구와 슬라이더를 적절히 섞으며 물오른 기량을 과시했다. 다음날(25일) SK 타자들은 우타자 몸쪽으로 꽉 차는 리즈의 직구에 “그건 못 친다”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리즈를 변하게 했을까. 차 코치는 “가지고 있는 기량이 모자란 선수는 아니다. 시즌 초반 부진했던 것은 단지 선수가 너무 불안해해서 그랬다. 보기보다는 상당히 착하고 여린 선수”라며 심리적인 측면에서 그 이유를 찾았다. 이어 차 코치는 “물론 기술적인 측면도 보완을 했지만 ‘끝까지 안 버리고 가겠다’라는 감독님의 무한신임이 리즈의 부활 요인”이라고 덧붙였다.
심리적으로 안정을 찾다보니 제구도 덩달아 안정됐다. 차 코치는 후반기 리즈의 호투 비결에 대해 “볼넷이 많이 줄었다”고 했다. 리즈의 주자견제능력은 좋은 편이 아니다. 스스로도 그것을 알기에 주자가 나가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그런데 볼넷이 줄어 주자를 내보내는 일이 줄어들었고 타자들과의 승부에도 좀 더 집중력이 생겼다. 선순환의 고리다.
습득 속도가 빠르다는 것도 리즈의 장점이다. 차 코치는 “리즈가 늦게 야구를 시작했다. 그리고 체계적인 훈련을 받지도 못했다. 퀵모션, 견제, 번트수비 등은 누가 가르쳐 준적이 없다고 하더라. 심지어 그립도 독학으로 공부했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기본기가 약하다는 말이지만 그만큼 성장의 여지가 크다고도 볼 수 있다. 차 코치는 “하나를 가르쳐주면 스펀지처럼 쑥쑥 빨아 들인다”라고 흡족해했다.
차 코치는 “이런 추세라면 리즈는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 된 투수가 될 수 있다. 1년 뒤에는 야구가 더 늘 것”이라고 자신했다. 하지만 살짝 걱정하는 눈치도 숨기지 않았다. 차 코치는 “1년이 지나면 여기서 못 보고 TV를 통해 리즈를 보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고 했다. LG는 리즈와의 재계약 방침을 굳혔지만 이 정도 구위를 유지할 수 있다면 메이저리그에서도 눈독을 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것. 너무 잘해도 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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