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주루사였다.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이기에 더 아쉬웠다. 그래도 이승엽(36·삼성)은 이승엽이다. 실수 하나로 지금까지의 활약, 그리고 기대치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이승엽은 29일 문학구장에서 열린 SK와의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치명적인 주루 실수를 저질렀다. 0-0으로 맞선 4회 무사 1·2루였다. 최형우의 타구가 우중간으로 날아가자 2루에 있던 이승엽은 곧바로 3루를 향했다. 그러나 타구는 SK 우익수 임훈의 글러브 속으로 들어갔고 이승엽은 귀루하지 못했다. 2·3루 사이에 멈춰 선 이승엽은 고개를 숙였다. 김재걸 주루코치의 사인도 있었지만 제대로 타구를 확인하지 않은 이승엽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 실수는 경기의 흐름을 바꿔놓았다. SK의 안도의 한숨을 내쉰 반면 삼성은 선취점의 기회를 놓쳤다. 경기 후 SK 선발투수 김광현은 “3루 베이스 커버를 들어가고 있었는데 나도 어리둥절했다”라고 했다. 류중일 삼성 감독도 “경험이 많은 이승엽이 실수를 저질렀다”면서 “그런 부분이 없었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내비쳤다. 결국 삼성은 SK에 1-4로 지며 시리즈 전적의 균형을 허용했다.
하지만 그 외의 부분은 모두 좋았다. 특히 타석에서는 예민한 감각을 유지했다. 욕심 내지 않는 타격이 인상적이었다. 정규시즌에서 8타수 무안타 3삼진으로 약했던 김광현과의 맞대결에서도 완승을 거뒀다. 첫 타석에서 좌익수 플라이로 물러난 이승엽은 김광현의 유인구에 말려들지 않았다. 오히려 SK 배터리의 성향을 역이용하며 2개의 안타를 때렸다.
0-0이었던 4회 선두 타자로 나선 이승엽은 1B-1S에서 바깥쪽 높은 직구에 방망이가 헛돌았다. 4구도 바깥쪽 낮은 코스로 들어왔다. 밸런스가 무너져 타이밍을 맞추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승엽은 이를 무리하게 건드리지 않았다. 탁월한 배트 컨트롤을 통해 방향만 2루 쪽으로 바꿔 놨다. SK 2루수 정근우가 전력 질주해 공을 잡았지만 이승엽은 이미 1루 베이스를 통과한 뒤였다.
세 번째 타석은 수 싸움의 완승이었다. 김광현은 바깥쪽 직구로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았다. 2·3구 역시 바깥쪽 직구였다. 스트라이크존을 많이 벗어난 유인구였다. 한 번쯤 몸쪽 승부를 예상해 볼 만한 타이밍이었다. 그러나 이승엽은 SK 배터리의 바깥쪽 승부를 확신하고 과감하게 배트를 냈다. 4구는 2·3구보다 좀 더 가운데로 들어오는 직구였고 이승엽의 배트는 경쾌하게 돌아갔다. 깨끗한 우전안타였다.
이승엽은 한국시리즈 4경기에서 타율 3할5푼7리(14타수 5안타) 1홈런 4타점을 기록했다. 타점은 최형우(8타점)에 이어 팀 내 2위, 총루타수(9루타)는 1위다. 기복도 없이 꾸준하다. 장타를 의식한 스윙보다는 팀을 위한 최선의 타격을 하고 있다. 이승엽이기에 가능했던 1차전 홈런은 SK 마운드에 적지 않은 압박감으로 작용하고 있다.
4차전에서의 실수는 잊어야 한다. 고개를 숙일 필요도 없다. 아직 할 일이 더 많은 이승엽이다. 가뜩이나 자신의 뒤에 위치하는 박석민 최형우의 방망이가 잘 맞지 않고 있다. 이승엽에게 걸리는 부담이 더 커졌다. 게다가 뼈아픈 주루사를 만회할 기회는 아직 많이 남아 있다. 삼성은 한국시리즈 2연패를 위해 최대 3경기를 더 치러야 한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당시 이승엽은 극심한 타격 부진에 시달렸다. 그러나 일본과의 4강전에서 극적인 홈런을 쏘아 올리며 그동안 진 빚을 한 번에 갚았다. 자신의 실수는 꼭 스스로 만회했던 이승엽이다. 역설적으로 4차전에서의 주루사는 남은 시리즈에서 이승엽의 활약을 기대할 수 있는 이유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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