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프로야구

삼성을 떠난 정현욱, LG가 그를 감동시킨 한마디 있다

라데츠(radetz) 2012. 11. 18. 11:56

 

LG로 이적한 정현욱. 삼성 시절 모습.

 

정현욱(34·LG)은 경북 고령에서 태어났지만 서울에서 줄곧 성장했다. 장안초, 건대부중, 동대문상고를 졸업했다. 그가 프로야구 선수로 자리잡은 곳은 대구였다. 1996년 2차 3라운드 21순위로 삼성 라이온즈 유니폼을 입었다. 17년이 흘렀다. 정현욱이 제2의 고향 대구를 떠나 서울로 돌아온다. 그는 17일 서울 연고 LG 트윈스와 4년 FA 계약했다. 총액 28억6000만원(최대)에 사인했다.

삼성은 베테랑 정현욱을 잡지 못했다. 잡으려고 노력했지만 실패했다. 정현욱의 요구 조건을 끝내 만족시키지 못했다. 둘은 계약 기간과 돈(연봉과 계약금)에서 서로 의견차를 보였는데 결국 줄이지 못했다.

삼성은 국내 9개 구단 중 돈싸움에선 최강자라고 봐야 한다. 그만큼 가장 막강한 자금 동원 능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돈을 과감하게 쓸 데가 있고, 아닐 때가 있는 법이다. 삼성은 그들 나름대로 명확한 판단 기준이 있다.

삼성은 정현욱과 5차례 이상 만나 협상을 벌였다. 최소한의 성의를 보였다. 삼성에서 17년 동안 몸담았던 정현욱은 투수진의 최고 맏형이었다. 2007년까지 약 10년 이상 빛을 보지 못했다. 그랬던 정현욱은 2008년부터 삼성 불펜에서 없어서는 안 될 선수로 둔갑했다. 선발과 불펜을 전천후로 오갔다. 2008년 10승4패11홀드라는 최고의 성적을 냈다.

그 덕분에 2009년 월드베이스볼클랙식(WBC)에서 태극마크까지 달았고, '국민노예'라는 애칭까지 생겼다. 이후 지난해까지 3년 연속 두 자릿수 홀드를 기록했다. 올해까지 지난 5년 연속으로 50경기 이상 등판했다. 삼성이 지난해와 올해 2년 연속으로 페넌트레이스와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는데 밑거름이 됐다.

삼성은 이런 그의 공을 인정했다. 하지만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 정현욱이 내리막이라고 봤다. 그는 올해 54경기에서 2승5패3홀드(평균자책점 3.16)로 최근 5년 기록 중 가장 좋지 않았다. 엄밀하게 말해 지난 4년 동안 너무 잘했고, 올해는 하필 첫 FA 조건을 갖추는 해에 개인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았다. 삼성은 정현욱의 적지 않은 나이(34세)를 감안할 때 앞으로 더 좋은 피칭은 힘들다고 봤다. 부상 위험까지 고려했다.

정현욱은 삼성과의 협상 테이블에서 4년 계약을 주장했다고 한다. 삼성은 일단 3년 계약한 후 잘 할 경우 1년을 더 계약하자고 했다. 정현욱은 삼성에 줄곧 1년 더 해달라고 했지만 이견은 좁혀지지 않았다. 따라서 총 금액 차이도 적지 않았다. 5억원(추정) 이상 났을 가능성이 높다.

그는 올해 삼성에서 연봉 2억5000만원을 받았다. 정현욱은 "지금까지 삼성에 있으면서 구단이 하자는 대로 연봉에 사인했다. 하지만 17년 만에 처음으로 FA가 됐다. 내 목소리를 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삼성은 원소속 구단과의 1차 마지막 협상일이었던 16일 오후 정현욱과 최종 만남을 가졌지만 작별했다. 그리고 정현욱은 타구단과 협상이 가능한 17일 바로 LG와 사인했다.

LG가 정현욱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만족할 만한 돈 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LG는 나에게 이번 FA가 마지막이 아니다. 한 번 더 FA 계약을 할 수 있게 도와주겠다. 설령 4년 후 하지 못할 수 있지만 도와주겠다는 그 말이 좋았다"고 말했다.

4년 후 그의 나이 38세다. 그때까지 30대 초반 삼성에서 보여주었던 것 만큼 던져줄 지는 지금으로선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다. 다수의 FA 투수들이 계약 첫해 몸이 아파 제 실력 발휘를 못했다.

정현욱은 지난 5년 동안 크게 아파본 적이 없다. 삼성의 주요 투수들이 다 한번씩 수술대에 오를 때 정현욱이 거의 유일하게 버텨주었다. 그는 나이가 들수록 몸관리에 자신이 있다고 했다.

정현욱은 "이번 계약 협상을 하면서 대구 수성못을 하루에도 몇 바퀴 이상 걸었다"면서 "돈을 많이 벌게 돼 기분이 무척 좋아야 하는데 꼭 그렇지 않다. 삼성 동료들이 잘 됐다면서도 아쉽다는 반응이다"고 말했다.

그는 정이 많이 든 제2의 고향 대구를 떠나야 한다. 아내를 만났고, 자식도 낳았다. 아직 아내와 서울살이에 대해 구체적인 계획도 세우지 못했다. 정현욱은 삼성에 서운한 부분에 대해선 얘기하지 않았다.

정현욱과 삼성은 그동안 잘 지냈다. 적절한 타이밍에서 서로를 놓아주었다고 봐야 한다. 삼성은 젊고 재능있는 투수들이 많아 정현욱이 빠져도 큰 전력 공백이 없을 것이다. 정현욱에게 더 의지할수록 세대교체만 늦어질 것이다. 대신 정현욱은 LG로 가면서 새로운 팀에서 또 다른 경험과 공부를 하게 됐다. LG의 오랜 가을야구 갈증을 풀어주는데 힘이 된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