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기사는 바스켓코리아 웹진 2021년 11월호에 게재됐고, 본 기사를 위한 인터뷰는 2021년 10월 13일에 진행됐습니다.
‘우물을 파도 한 우물만 파라’는 말이 있다. ‘무엇을 하든, 한 가지 일을 끝까지 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뜻이다.
변청운(성남초등학교 코치)은 ‘농구’라는 한 우물만 팠다. 농구를 통해 엄청난 부와 명예를 축적한 건 아니지만, 농구 하나에 집중해 자신만의 성과를 이뤘다. 그래서 변청운은 “농구는 내 인생의 길”이라고 표현했다.
어려웠던 시절, 소중한 결실
1998년. KBL은 창립 최초로 국내신인선수 드래프트를 개최했다. 현주엽(전 창원 LG 감독)과 윤영필, 김택훈과 신기성(현 SPOTV 해설위원) 등 쟁쟁한 선수들이 KBL 첫 번째 드래프트에 참가했다.
변청운 역시 KBL 첫 번째 드래프트에 참가했다. 쟁쟁한 경쟁자들 속에 로터리 픽의 한 자리를 꿰찼다. 전체 4순위로 광주 나산 플라망스(현 수원 kt 소닉붐)에 입단한 것. 언더사이즈 빅맨이지만, 힘과 투지를 높이 평가받았다.
그렇지만 변청운이 소속된 나산은 골드뱅크로 바뀌었고, 골드뱅크는 코리아텐더로 이름을 바꿨다. 해당 기업 모두 재정난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변청운 역시 어려운 시절을 경험했다.
그러나 선수 시절 말년에 우승을 차지했다. 개인 통산 384경기 출전이라는 결실도 남겼다. 변청운이 KBL에 남긴 족적은 그렇게 작지 않았다.
드래프트 이야기부터 부탁드립니다.
제 학년부터 수능을 처음으로 봤습니다. 신인 드래프트도 처음 했습니다. 요즘은 트라이아웃과 컴바인 등 여러 절차를 거친 후 추첨 행사를 하지만, 저희 때는 추첨 행사만 있었습니다. 그런 것들이 기억이 나요.
처음 입단한 나산, 골드뱅크, 코리아텐더 모두 재정난을 겪었습니다.
대부분 구단들이 6월부터 훈련을 시작했지만, 저희는 기업 사정 때문에 7월부터 훈련을 시작했습니다. 해외 전지 훈련도 못 갔죠. 그래서 지리산을 갔고, 지리산에서 했던 산악 훈련이 기억에 남습니다.(웃음)
그래도 분위기는 타 팀 못지않게 좋았습니다. 환경 면에서 부족함이 있었을 뿐, 코칭스태프와 사무국, 선배 형들이 워낙 잘해줬거든요.
기업 사정이 어려웠지만, 대학 생활보다 윤택하게 운동했습니다. 프로에 왔다는 걸 실감했죠. 그래서 재정적인 어려움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것 같아요. 무엇보다 운동만 열심히 하면, 잘 될 거라고 믿었어요.
2007~2008 시즌 원주 동부(현 원주 DB)에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변청운은 당시 정규리그 28경기에 출전했고, 평균 7분 57초를 소화했다. 플레이오프와 챔피언 결정전에도 각각 5경기와 3경기를 나섰다)
KCC에 있을 때도 기회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모두 준우승으로 끝났어요. 그리고 동부로 이적했습니다. 제가 비록 동부에 큰 도움을 주지 못했지만, 우승 반지를 획득했습니다.
저한테는 큰 영광이었습니다. 프로 선수라면 누구나 우승 반지 하나를 끼는 게 소원이거든요. 우승을 한 번도 못하고 은퇴하는 선수들이 많은데, 저는 우승을 해봤습니다. 우승 반지가 있다는 것만 해도, 저한테는 가문의 영광입니다. 아직도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고요.
기억에 남는 경기가 있을까요?
2002~2003 시즌 코리아텐더에서 4강에 진출했습니다. 서울 삼성과 6강 플레이오프에서 2승으로 이긴 게 기억이 납니다. 어려울 때 다들 한 마음으로 뭉쳐서 좋은 결과를 냈다고 생각해요. 그런 일이 흔치 않기 때문에, 더 기억에 남습니다.
동부에서 우승을 한 것도 기억에 남습니다. 감독님과 코치님이 워낙 잘해주셔서.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어요. 그런 추억들이 아직도 머리 속에 남아있는 것 같아요.
은퇴를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으셨나요?
2009~2010 시즌에 허리를 다쳤습니다. 경기에 거의 나서지 못했습니다. 숙소에만 거의 있었죠. 그 시기에 모교인 대경중학교가 “지도자를 하면 어떻겠냐?”고 연락을 주셨습니다.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감독님과 코치님, 여러 선배님들한테 조언을 구했습니다. 다들 “모교에서 코치를 해보는 게 너한테 좋은 기회인 것 같다”고 조언해주셨고, 저도 고민 끝에 “열심히 하겠다”고 대경중학교에 이야기했습니다.
우승한 팀에서 은퇴했습니다.
동부에서 저를 너무 좋게 봐주셨습니다. 그래서 은퇴식도 할 수 있었습니다. 은퇴식을 못하고 은퇴하는 선수도 많기 때문에, ‘은퇴식’이라는 무대 자체가 저에게는 영광스러웠습니다. 동부에 인정받았다는 생각도 했고요. 지금도 동부에 너무 감사합니다.
지도자 생활의 키워드 : 반성 그리고 소통
변청운은 은퇴 후 모교인 대경중학교 코치로 부임했다. 그러나 대경중학교와 대경정보산업고등학교가 농구부 해체를 선언했고, 변청운은 곧바로 배재중학교 코치로 부임했다.
배재중학교에서 경험을 쌓은 후, 연계 학교인 배재고등학교에서 코치를 맡았다. 5년 동안 배재고등학교 선수들을 가르친 변청운은 현재 성남초등학교에서 어린 선수들을 지도하고 있다.
오랜 시간 아마추어 지도자를 했다. 그러나 ‘후회’라는 단어가 변청운의 뇌리에 박혔다. 변청운은 자신의 잘못된 지도 방식을 자책했다. 그리고 성남초등학교에서는 이전의 과오를 저지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어린 선수들을 가르치는 걸 더 조심스럽게 여겼다.
은퇴 후에 곧바로 대경중학교 코치로 부임했습니다.
선수로서 배우기만 했습니다. 누구한테 받아보기만 했고요. 후배 선수들이나 제가 가르쳐야 할 선수들에게 어떤 걸 어떻게 알려줘야 하는지를 고민했습니다.
저를 가르쳐주셨던 은사님과 코치 선생님, 다른 학교 선생님들에게 많은 조언을 들었습니다. 연계 학교인 대경정보산업고등학교의 운동 방식을 보고, 메모를 하기도 했고요.
가장 중요한 건 아이들한테 다가가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어떤 게 부족한지를 보려고 했고, 어떤 걸 바라는지 들으려고 했습니다. 아이들이 원하는 것부터 물어보려고 했고, 아이들과 하나가 되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해야, 저도 아이들도 서로를 잘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렇게 믿음을 쌓다 보니, 서로 좋은 관계를 형성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가 대경중학교 농구부가 해체됐습니다. 곧바로 배재중학교로 가셨고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컸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배재중학교는 내 모교다’는 마음으로 선수들을 가르치려고 했습니다. 대경중학교 때처럼, 아이들에게 먼저 다가가려고 했고요.
그리고 5년 동안 배재고등학교 코치로 일하셨습니다.
시설이 정말 좋았습니다. 다만, 배재고등학교가 자율형 사립고이기 때문에, 선수 선발 절차가 쉽지 않았습니다.
1년에 뽑을 수 있는 농구부 정원이 4명밖에 되지 않았어요. 또, 저희 학교에 럭비부와 축구부, 야구부 등 운동부가 많았습니다. 선수들이 내야 하는 등록금 부담도 컸어요. 게다가 농구부 성적이 좋지 않아, (대학교) 진학에서도 어려움을 겪었고요.
무엇보다 제가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선수들을 지도했습니다. 진학 문제 때문에 성적만 생각했고, 애들을 엄하게만 지도했습니다. 칭찬 한 번 해주지 못했어요. 그 점이 너무 후회됩니다.
지난 5월부터 성남초등학교 코치로 부임하셨습니다.
배재고등학교 코치를 그만두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핵심은 ‘너무 앞만 보고 달렸다’였어요. ‘아이들이 나 때문에 상처를 받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했고요. 그런 생각들이 많이 들어서, 저 스스로 달라져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그만큼 후회와 아쉬움이 컸거든요.
‘지도자의 길을 다시 걸어야 하나? 내가 과연 지도자의 자격이 있는 걸까?’라는 근본적인 의문을 품었습니다. 그렇지만 ‘기회가 온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현실적인 고민도 했죠. 여러 가지 고민이 많이 든 시기였어요.
그럴 때 성남초등학교가 저에게 코치 제의를 받았습니다. 제의를 받고 나서도, 고민을 했어요. 그렇지만 아내가 많은 격려를 해줬습니다. 고민 끝에 성남초등학교의 제의를 수락했습니다.
비록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아이들 각자의 색깔과 아이들이 지닌 자존감을 살려주려고 합니다. 아이들을 많이 칭찬해주려고 해요.
또, 아이들이 특정한 틀에 갇히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서 기본기를 가르치되, 다양한 걸 알려줘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아이들도 자기에 맞는 농구를 할 수 있거든요. 현재진행형이기는 하지만, 그런 철학을 갖고 아이들을 가르치려고 해요.
무엇보다 농구를 향한 흥미와 농구를 향한 호기심이 아이들한테서 끊기면 안 됩니다. 농구를 하고 싶다는 마음을 품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도 아이들과 매일 즐긴다는 생각으로 운동하고 있어요.(웃음)
“농구요? 제 인생의 길이죠”
성남초등학교의 코치인 변청운은 농구선수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첫째 딸인 변소정은 지난 2021~2022 WKBL 신입선수선발회에서 전체 3순위로 인천 신한은행에 입단했고, 둘째 딸인 변하정도 분당경영고등학교에서 농구를 하고 있다.
그래서 ‘변청운’이라는 이름이 최근 들어 많은 사람들에게 언급되고 있다. 변청운 본인과 농구 관계자, 농구 팬 모두 ‘선수 변청운’을 더 추억하고 있다. 그러나 변청운의 소망은 따로 있었다. 그의 바람은 무엇이었을까?
‘선수 변청운’을 돌아봐주세요.
성실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미친 듯이 농구만 했던 것 같고요.(웃음) 농구 하나만 보고 살았고, 주위 사람들로부터 행복을 많이 받은 선수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행복한 선수 생활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 딸(변소정)이 프로 무대에 입성했습니다. 느낌이 달랐을 것 같은데요.
자식들이 농구를 잘 한다고 들을 때 행복합니다.(웃음)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보다 제 아이들이 농구 팬들의 기억에 남았으면 좋겠어요.
농구는 코치님한테 어떤 의미인가요?
정말 힘든데...(웃음) 간단히 말씀드리면, 제 인생의 길이자 가족의 길이라고 생각해요. 제 인생의 길을 밝혀준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선수 변청운’을 추억으로 삼는 분들한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를 기억하실 분들이 얼마나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그렇게 많이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웃음) 잊혀졌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할 것 같아요.
그렇지만 딸의 이야기가 나오면서, 저의 예전 이야기도 조금씩 나오는 것 같아요. 그것만 해도, 너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저보다 제 딸들을 많이 응원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지도하고 있는 성남초등학교 선수들이 잘 될 수 있게 많은 격려의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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