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선수들의 꿈은 큰물에서 노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많은 걸 희생하고 감수해야 한다. 융숭한 대접을 바라는 건
옳지 않다.
메이저리그에 도전하는 류현진(한화)이 포스팅 시스템과 관련한 공식 입장을 밝혔다.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할 경우, 국내에 남겠다고 했다. ‘대한민국의 에이스’로서 자존심을 지켜줘야 가겠다는 것이다.
7년을 뛴 류현진은 한화로부터 메이저리그 진출 허락을 받았다. 그러나 ‘조건부 승낙’이다. 최고 입찰 금액이 류현진과 한화가 합의한 기준 이상이 되어야 미국으로 떠날 수 있다. 그 금액은 비공개 방침인데, 한화 측은 ‘터무니없는 액수는 아니다’라는 입장이다.
만약 기준에 미치지 못할 경우, 류현진의 미국행은 무산된다. 헐값을 받으면서 굳이 가지 않겠다는 생각이다. 자존심을 세워주고, 그에 상응하는 대우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여론몰이도 크게 다르지 않다. 류현진 본인은 물론, 국내 프로야구와 후배들을 위해서라도 합당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류현진의 메이저리그행은 중요하고 민감한 사안이다. 국내 무대서 뛰다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는 첫 사례다. 이전 메이저리거는 아마추어로서 입단하거나 일본 등 해외 야구를 경험한 이들이었다.
따라서 그 ‘1호’ 타이틀을 달고 있는 류현진이 받을 포스팅시스템 금액은 향후 메이저리그에 도전하는 이들의 기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즉 류현진이 제대로 대우를 받으며 길을 잘 닦아야 다른 이들도 좀 더 순탄하게 미국땅을 밟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는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과거 이상훈, 이승엽, 임창용 등 선배들이 메이저리그 진출을 꾀할 때도 항상 ‘몸값’과 ‘자존심’이 거론됐다. 값어치를 인정받아야 한다는 건데 이는 다시 말해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하나같이 푸대접을 받진 않겠다면서 그 꿈을 접었다. 그 반복됐던 그림 속에 그 누구도 국내서 뛰다가 메이저리그에 직행하지 못했다. 포스팅시스템이 생긴 지 15년 동안 1명도 없었다.
이 변치 않은 주장과 환경은 꽤 위험하다. 그리고 ‘도전자’의 자세가 아니다. 누가 뭐라 해도 메이저리그는 프로야구계의 최고 무대이자 중심이다. 한국이 최근 국제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위상을 세웠지만, 프로야구계에서 변방에 가깝고 메이저리그보다 수준이 낮다. 메이저리그에서 국내 프로야구 기록에 대해 큰 가중치를 두지 않는다는 건 오래 전부터 잘 알려진 사실이다.
도전자라면 자존심을 굽히고 자세를 낮출 필요가 있다. 여기에 철저한 시장 논리에서 자존심을 운운하는 건 우스운 일이다. 입찰 금액은 일종의 이적료다. 흔히 선수의 몸값을 평가할 때 연봉을 들지만, 시장가치의 기준이 되는 게 이적료다.
다른 종목 사례를 보자. 가장 이적이 활발한 종목은 역시 축구다. 절대 비교가 될 수는 없지만 참조할 만은 하다.
태극전사들이 ‘축구종가’를 누빈 건 오래 전 일이 아니다. 박지성이 2005년 첫 테이프를 끊었다. 그 뒤를 이어 이영표와 설기현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무대를 밟았다. 이들의 활약으로 잉글랜드 팀들은 하나둘씩 한국 선수들에 대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적료는 별개였다. K리그에서 날고 긴 선수라도 천문학적인 이적료는 없었다. 박지성과 이영표는 대우를 받았지만, 네덜란드 에레디비지에서 뛰며 이미 유럽 축구에서 검증을 받았다. K리그에서 빅리그로 직행한 사례가 아니니 큰 참조사항은 아니다.
K리그에서 곧바로 프리미어리거가 된 이는 이동국이 처음이다. 이동국은 2007년 1월 포항을 떠나 미들스브로에 이적했다. 이적료는 한 푼도 없었다. 계약기간이 2개월 남았던 이동국은 포항이 대승적인 차원에서 이적료 없이 이적을 허락해 영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잉글랜드 팀으로부터 이적료를 챙긴 건 김두현의 성남이 가장 먼저였다. 김두현은 2007년 초 선 임대 후 완전이적 조건으로 웨스트 브롬위치에 입단했다. 웨스트 브롬위치가 성남에게 지급한 이적료는 55만 파운드(당시 환율 약 11억 원)였다. 김두현은 2006년 K리그 MVP 수상자였다. 2004아테네올림픽과 2006독일월드컵, 2006도하아시아경기대회 등 각종 국제대회 무대에도 나섰다. 당시 K리그 최고의 별이었지만, ‘특별대우’는 없었다. 헐값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 이후에는 대우는 달라졌다. 한국선수들의 활약상을 직접 두 눈으로 본 잉글랜드 팀은 합당한 금액을 제시하며 K리거를 영입했다. 이청용과 지동원의 이적료는 각각 44억 원과 38억 원으로 폭등했다. 김두현의 몸값보다 3,4배 이상 많다.
진입 장벽도 점차 허물어졌다. 이동국과 김두현에 이어 조원희, 이청용, 지동원이 K리그에서 프리미어리그로 직행했다. 프리미어리거 10명 중 절반인 5명이 그 전철을 밟았다. 과거 그토록 넘기 힘들었던 문턱이 대폭 낮아졌다.
향후 이적료의 기준이 되는 건 첫 주자의 이적료(입찰 금액)가 아니다. 어떻게든 그 관문을 뚫고 들어가 좋은 활약을 펼치면 자연스레 뒤이은 주자에 대한 대우도 좋아지기 마련이다.
류현진이 할 일은 좋은 대우를 받는 게 아니라, 첫 사례를 만드는 것이다. 류현진이 메이저리그에서 좋은 활약을 펼친다면 대우는 점차 좋아지기 마련이다. 그게 미국행을 꿈꾸고 있는 다른 이들을 위해 할 일이다.
결국은 누군가는 ‘희생’을 감수할 필요도 있다. 진짜 도전을 하고 싶다면 ‘자존심’과 ‘욕심’도 버려야 한다.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이방인에게 ‘파격 대우’를 해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 특히 낮은 무대에서 도전하는 이라면 더욱 더. 그런 알량한 자존심과 파격 대우를 운운한다면, 국내 프로야구는 계속 우물 안 개구리가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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