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WBC

[스크랩] 한국과 일본야구, WBC통해 드러난 숨은 격차.

라데츠(radetz) 2013. 3. 18. 00:03

한국과 일본야구는 영원한 숙적이다. 두 팀은 국제무대에서 만날때마다 팽팽한 명승부를 펼쳐왔다. 자국리그의 수준이나 객관적 전력은 아직 일본이 앞선다는 평가를 받지만, 국제대회에서는 한국이 여러 차례 결정적인 순간마다 일본의 발목을 잡으며 팽팽한 라이벌 구도를 형성해왔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도 양팀은 맞대결만 놓고보면 종합전적 4승 4패로 우열을 가리지못했다.

 

하지만 이번 2013 WBC에서는 양팀의 명암이 극명하게 엇갈렸다. 한국이 사상 최초로 1라운드에서 조기탈락하는 굴욕을 겪으며 일본과의 WBC 재회는 무산됐다. 반면 일본은 3회 연속 4강진출에 성공하며 WBC 3연패를 향한 청신호를 밝혔다.

 

 

얄밉지만 진짜로 야구 잘하기는 잘한다.

그래서 만나면 더 꼭 이기고싶은 상대다.

양국은 이번 대회를 앞두고 비슷한 시행착오를 겪었다. 일단 국제경험이 풍부한 베테랑과 메이저리거 선수들이 대거 빠지며 지난 두 번의 대회에 비하여 최상의 전력을 꾸리지못했다. 국내파 위주로 구성된 대표팀은 자국에서도 역대 최약체소리를 들었고 코칭스태프 구성에서도 잡음이 이는 등, 전반적인 과정이 순탄지못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한국은 1라운드에서 대만, 네덜란드, 호주와 한 조에 배정됐다. 첫 라운드부터 부담스러운 일본을 상대해야했던 예전 대회에 비하여 유리한 조편성이라는 낙관론도 있었지만 결과는 딴판이었다. 한국은 네덜란드와의 첫 경기에서 충격의 영봉패(0-5)를 당한 것이 빌미가 되어 2승을 거두고도 득실차로 2라운드 탈락이 좌절되는 악몽을 맞이했다.

 

 

시행착오를 겪은 것은 일본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은 1라운드에서 복병 브라질에 시종일관 고전을 면치못했고, 2라운드에서는 대만에 패배 일보직전까지 몰리는 아찔한 상황을 맞이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일본은 끝내 무너지지 않았다. 브라질과 대만을 상대로 고전하면서도 막판에 짜릿한 역전승을 거두며 기사회생했다. 썩 좋지못한 경기내용, 불리한 흐름에서도 기회를 놓치지않고 어떻게든 '이기는 경기를 만들어내는' 일본야구 특유의 집요함이 돋보인 순간이었다.

 

 

1,2회 WBC에서 한국대표팀 감독을 역임했던 김인식 KBO 기술위원장은 국제대회에서 누구보다 일본과 많이 맞대결해본 경험이 있는 지도자다. 김위원장은 WBC 사령탑 시절 일본에 승리를 거두고도 "단기전에서 한두번 이겼다고 우리가 일본야구를 넘어섰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일본은 언제나 상대하기 까다로운 팀이다. 우리는 일급 선수와 그렇지못한 선수들간 기량차이가 있지만, 일본은 대등한 수준의 대표팀을 적어도 두 팀은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선수층이 풍부하다. 우리가 아직 따라잡을수 없는 부분"이라며 일본야구를 높게 평가한바있다. 사소해보이지만 어쩌면 이것이 한국야구와 일본야구간의 진정한 숨은 격차인지도 모른다.

 

 

진정한 강팀의 차이는 '위기관리' 능력에서 나온다. 한국도 일본도, 이번 WBC에서 비슷한 위기가 있었다. 성적에 대한 압박감이라면 이미 2회 연속 우승을 차지한 일본이 어쩌면 더 심했다. 하지만 한국은 초반 고비를 넘어서지못했고 일본은 극복했다. 상대의 수준보다는 결국 스스로 얼마나 자신의 실력을 발휘하느냐에 성패가 갈렸다.

 

 

한국은 믿었던 주전 선수들이 부진할 때 대책이 없었다. 코칭스태프를 비롯하여 선수단의 국제경험와 위기대처능력도 지난 대회에 미칠바가 못됐다. 한마디로 보여줄수있는 패가 다양하지 못했다. 반면 선수층이 풍부하고 기량이 고른 일본은 특정 선수들이 부진해도 다른 선수들이 언제든 그 빈 자리를 메웠다. 기동력과 작전을 중시하는 '스몰볼'로 유명한 일본이었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최다홈런 신기록을 경신하는 등, 언제든 화끈한 빅볼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설령 내용상 기복이 있을때라도 수비와 주루 등 기본적인 플레이에 대한 집중력은 흔들리지 않았다.

 

 

야구는 흔히 멘탈싸움이라고도 한다. 우리가 국제무대에서 일본을 만날 때 강한 모습을 보이곤 하는 것은, 객관적인 전력을 떠나 일본에게만은 질수없다는 한국 특유의 강한 승부욕과 집중력의 영향도 크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 일본이 아닌 다른 팀들을 상대로 한국야구는 특유의 끈끈함을 전혀 보여주지못했다. 오히려 네덜란드와 대만을 상대로 잦은 수비실수로 내주지말아야할 실점을 내주고 허무하게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줬다. 지는 경기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않았고, 심지어 약팀을 상대로 콜드게임승을 거둔 경기조차 끝까지 집요하리만큼 상대를 무너뜨리는 일본의 집중력과 대조를 이뤘다.

 

 

진정한 정신력이란 특정상대를 만났을때 불타오르는 승부욕이나, 승리에 대한 과도한 집착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어떤 조건에서 어떤 상대를 만나든, 기복없이 자기 실력을 다 발휘할수 있는 안정감과 '일관성'이야말로 진정 높은 수준의 멘탈게임이라고 할만하다. 대표팀이라면 굳이 한일전만이 아니더라도 언제나 그라운드에서 매순간 최선을 다해야하는 것은 물론이다. 이런 것은 누가 시켜서 되는 것이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야구와 승부를 대하는 인식 혹은 습관의 차이에서 결정된다.

 

 

2013 월드베이스볼은 한국 입장에서는 이미 지나간 대회다. 그러나 야구는 계속되고 국제대회도 또다시 돌아온다. 언젠가는 일본과 다시 부딪쳐야하고, 일본야구를 넘어서야 한국이 진정한 정상의 길에 가까워진다. 일본의 선전에 대해서도 부러움과 질투만이 아닌, 우리의 현실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이어져야할 대목이다. 이번 대회에서 드러난 실패와 시행착오의 경험을 타산지석으로 본받아야할 필요가 있다.

출처 : 일생에 단 한번, 아주 특별한 순간
글쓴이 : 구사일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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