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러브 대신 방망이를 손에 잡은 마이카 오윙스
2009년 5월. 세인트루이스에 6-7로 뒤진 신시내티의 더스티 베이커 감독은 9회말 2아웃이 되자 비장의 카드를 꺼내들었다. 팬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 속에 등장한 선수는 투수 마이카 오윙스였다. 그는 세인트루이스의 마무리 투수 라이언 프랭클린과 마주했다.(그해 프랭클린은 4승 3패 38세이브 평균자책점 1.98을 기록했다.) 승부는 풀 카운트 접전을 넘어 9구 승부까지 이어졌다. 프랭클린은 바깥쪽 꽉 찬 슬라이더를 결정구로 사용했지만, 오윙스는 좌측 담장 너머로 공을 날려 보냈다. 긴 수염의 프랭클린이 어이없다는 듯 웃고 있는 사이, 홈런을 허용한 투수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오윙스는 전력질주로 순식간에 홈플레이트를 밟고 있었다. 오윙스의 통산 2호 대타 홈런이었다.
타격보다 피칭에 흥미를 느꼈던 오윙스
오윙스는 고등학교 시절 미국 전역을 대표하는 거포 타자였다. 그가 고등학교 재학중 때려낸 69개의 홈런은 역대 4위에 해당하는 성적이었으며, 코니 맥 월드시리즈에서는 3점 홈런을 때려내며 MVP에 선정되기도 했다. 투수에도 소질이 있었던 그는 앞선 4강전에서 만루 홈런을 때려냄과 동시에 마무리 투수로 등장해 팀의 승리를 지키기도 했다. 듬직한 체구를 자랑했던 오윙스는 고등학교 시절 직구 최고 구속을 94마일까지 기록하기도 했다.
오윙스는 1,2학년을 다닌 조지아 공대와 툴란 대학으로의 전학 후에도 투수와 타자 모두를 포기하지 못하고 있었다. 툴란 대학에서 오윙스는 16개의 홈런과 116개의 삼진을 잡아내며 두 부문 모두 팀 내에서 가장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윙스의 모습을 지켜본 스카우터들은 그의 공격적인 성향이 투수로의 성공에 훨씬 적합할 것으로 평가하고 있었다. 오윙스는 투수에게 가장 중요한 요소인 몸 쪽 공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었으며, 116개의 삼진을 잡는 사이 16개의 볼넷만 허용할 정도로 안정된 제구력을 자랑하고 있었다. 또한 그가 투수와 타자를 병행하는 사이 자신만의 확실한 포지션을 갖지 못한 부분도 오윙스를 투수의 길로 인도하고 있었으며, 무엇보다 오윙스 스스로가 타격보다 피칭에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오윙스가 투수로서의 야구 인생을 선택한 것은 결과적으로 실패로 귀결되고 말았다. 앞서 콜로라도와 시카고 컵스의 지명을 거절한 바 있는 오윙스는, 2005년 3라운드 전체 83순위로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에 입단했다. 2007년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오윙스는 첫 해 27경기에 선발 등판해 8승 8패 평균자책점 4.30을 기록하며 신인으로는 나쁘지 않은 성적으로 첫 해를 마감했다. 방망이 감이 여전했던 그는 투수 부문 실버슬러거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후로는 내리막의 연속이었다. 오윙스는 2008년 직구 최고구속이 직전 해 95마일에서 92.9마일로, 평균구속은 90.1마일에서 89.1마일로 떨어져 버렸다. 당시 스물여섯의 오윙스를 답답하게 했던 것은 구속 감소의 뚜렷한 이유가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2007년 소화한 152.2이닝은 크게 무리가 가는 수준은 아니었으며, 넓적다리에 느낀 햄스트링을 제외하면 이렇다 할 부상도 당하지 않았던 오윙스였다. 대신 그는 2008년 잔부상을 달고 시즌을 보내야 했는데, 스프링캠프에서 어깨에 뻐근함을 느꼈던 오윙스는 시즌에 들어서 DL에 등재되지는 않았지만 발목과 엉덩이, 등 그리고 다시 어깨에 통증을 느끼기도 했다.
오윙스는 그 해 7월 말 샌디에이고 파드레스 전에서 3이닝 동안 두 개의 홈런을 허용하며 6피안타 8실점으로 무너져 내렸다. 시즌 9패(6승)째를 기록함과 동시에 평균자책점은 5.93까지 치솟았다. 그리고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트리플 A로의 강등이었다. 하지만 그에겐 더 큰 충격적인 소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8월 초 1:3 웨이버 트레이드로 애리조나 유니폼을 입은 애덤 던의 추후 지명 선수로 그가 선택된 것이었다.(애덤 던은 애리조나에서 반 시즌만 뛰고 다시 워싱턴 유니폼으로 갈아입게 된다.) 당시 치열한 포스트시즌 경합을 벌이던 애리조나에게 오윙스를 기다려줄 여유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게 그는 한 시즌 반 만에 친정팀을 떠나게 됐다.(당시 어깨 통증을 느끼고 있던 오윙스는 그 해 다시는 마운드에 오르지 않았다. 대신 9월 12일(현지시간) 신시내티로 이적한 그는 트레이드 다음날 타석에 서는 것으로 복귀식을 치렀는데, 대타로 나선 10회초 2사 1루에서 1타점 결승 2루타를 때려내게 된다. 상대팀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였다.)
한 번 줄어들기 시작한 구속은 걷잡을 수 없이 떨어지고 있었다. 2009년 오윙스의 직구 평균 구속이 88.1마일까지 떨어져 있었다. 애당초 파이어볼러가 아니었던 그로서는 구속 감소로 인해 슬라이더, 체인지업의 위력까지 반감되면서 사면초가에 몰리고 있었다. 2009년 오윙스는 구속 대신 무브먼트를 선택함으로서 커터를 장착했지만 이 또한 큰 효과를 내지는 못하고 있었다. 2009년 선발과 불펜을 오간 오윙스의 성적은 7승 12패 평균자책점 5.34. 그리고 불펜으로만 활약한 2010년 역시 3승 2패 평균자책점 5.40으로 별다른 반전 없이 그는 그저 그런 투수로 전락하고 있었다.
2011년 오윙스는 마이너 계약을 통해 애리조나의 스프링캠프에 초청자격을 받게 된다. 오윙스는 스프링캠프에서 8경기에 등판해 1승 1패 평균자책점 7.36으로 별다른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하지만 친정팀인 애리조나 구단은 그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기로 했고, 오윙스는 투수로서 마지막 불꽃을 태우게 된다. 5월 말 땜질 선발로 메이저리그에 복귀한 오윙스는 주로 불펜으로 활약하며 33경기(4선발)에 등판해 8승 무패 평균자책점 3.57을 기록했다. 팀 내 주축 불펜 투수 가운데 가장 많은 승수와 두 번째로 많은 이닝을 소화했으며, 규정이닝을 기록하지는 못했지만 데뷔 첫 3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애리조나의 4년 만의 포스트시즌 진출에 기여하게 된다. 그리고 밀워키와의 디비전 시리즈 4차전에서 조 손더스에 이어 4회 구원 투수로 등판한 오윙스는, 2이닝 2피안타 무실점을 기록하며 자신의 유일무이한 포스트시즌 승리를 챙기기도 했다.
샌디에이고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지난해 오윙스는 6경기에 등판해 2패 평균자책점 2.79를 기록한 뒤 4월 25일 워싱턴과의 경기를 마지막으로 어깨 부상으로 다시는 마운드에 서지 못했다. 투산으로 이동해 재활에 매진했지만 이내 다시 찾아온 통증으로 재활 훈련도 마감해야 했다. 그리고 오윙스는 7월 초 전격적으로 투수에서 타자로의 전향을 선언하게 된다.
'타자 오윙스'는 성공할 수 있을까
.283 9홈런 35타점 OPS .813 (마이너리그 .337 1홈런 16타점 OPS .845)
오윙스의 메이저리그에서의 타격 성적이다. 더 놀라운 점은 9개의 홈런을 불과 205타수에서 기록했다는 점으로, 22.8타수당 1홈런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지난해 기준 23.1타수 당 1홈런을 기록한 라이언 짐머맨(25홈런)과 24.2타수 당 1홈런을 기록한 알렉스 리오스(25홈런)를 뛰어넘는 수치다.
오윙스의 메이저리그 통산 1호 홈런은 신인 시절이던 2007년 7월 김병현에게서 뽑아낸 것이었다.(김병현은 투수에게 통산 2개의 피홈런을 기록했는데, 나머지 하나는 현재 류현진과 선발 경쟁을 펼치고 있는 크리스 카푸아노에게 허용한 것이다.) 그리고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아 오윙스는 애틀랜타의 버디 칼라일을 상대로 연타석 홈런을 때려내게 된다. 그 날 경기에서 오윙스는 5타수 4안타 6타점 4득점을 기록했으며, 마운드에서는 7이닝 7탈삼진 3실점 호투를 펼치며 승리투수가 되기도 했다.
9개의 홈런 가운데 동점이나 앞서 나가는 점수를 만드는 홈런은 5차례나 됐으며, 2개의 대타 홈런으로 투수 역대 공동 3위에도 올라있다. 오윙스는 우타석에 들어섬에도 좌투수에 비해 우투수에 훨씬 강점을 보였으며(우투수 상대: .311 8홈런 29타점, 좌투수 상대: .211 1홈런 6타점), 대타로 타석에 들어섰을 때(.244 2홈런 8타점)보다 선발로 경기에 나섰을 때(.302 6홈런 23타점) 더 좋은 성적을 냈다.
그의 통산 득점권 타율은 .258로 투수로는 매우 준수한 수준이며, 특히 Late & Close 상황(7회 이후, 공격하는 팀이 1점 리드하고 있거나 동점이거나 지고 있는 상태에서 동점 주자가 나가 있는 상황) 타율은 .304(23타수 7안타 1홈런 5타점)로 표본이 많지는 않지만 대단히 빼어난 성적을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대학 시절 스카우터들의 우려대로 그의 공격적인 성향은 타격 성적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는데, 통산 8개의 볼넷을 얻어내는 동안 무려 72개의 삼진을 당하고 있기도 하다.
오윙스 ‘오랜 시간 생각해 온 일이다’
타자로의 전향을 선언했지만, 그는 아직 투수로서의 인생 역시 포기하지 않았다. 타자 전향을 발표하던 당시 오윙스는 ‘일시적으로’라는 단서를 붙임으로서 다시 투수로 복귀할 수도 있음을 시사해 놓은 상태다. 하지만 그가 어느덧 올해 서른 한 번째 생일을 맞이한다는 점, 투수로서의 돌파구를 마련하지 못한 상황에서 직구 평균 구속이 86마일대까지 떨어져 있다는 사실은, R.A. 디키와 같은 특별한 케이스가 아니고서야 그가 투수로서의 인생을 다시 시작하기란 여간 쉽지 않을 것임을 암시해 주고 있다.
지난해 10월 샌디에이고에서 방출 당한 마이카 오윙스는, 올 2월 워싱턴과의 마이너 계약을 통해 스프링캠프 시범경기에 참가하고 있다. 타자로 계약을 체결한 워싱턴은 오윙스의 포지션을 투수가 아닌 1루수로 명시해 놓았다. 시범경기 들어 1루와 좌익수를 오가고 있는 오윙스가 리그 최고 수준의 전력을 자랑하는 워싱턴에서 주전 자리를 꿰차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1루에는 지난해 33홈런-100타점을 기록한 아담 라로쉬가 버티고 있으며, 마이클 모스를 트레이드 할 정도의 탄탄한 외야라인에는 브라이스 하퍼-데나드 스판-제이슨 워스가 한 자리씩을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디비전시리즈 1차전 결승타의 주인공이자 1루와 외야를 오갈 수 있는 타일러 무어 뿐만 아니라 스티브 롬바르도찌, 로저 버나디나의 백업 멤버도 탄탄해 오윙스가 전력 내 자원으로 활용될지의 여부 역시 불투명한 상황이다.
하지만 오윙스는 타자로의 전향을 선언한 뒤 ‘오랜 시간 생각해 왔던 일이다’라고 말하며 즉흥적인 선택이 아니었음을 강조했다. 그리고 스프링캠프를 통해 왼 다리를 보다 앞쪽으로 끌고나가는등 타격 폼에도 일정부분 수정을 가하며 타자로서의 성공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오윙스는 현재까지 시범경기 .400(25타수 10안타)의 고타율과 2홈런 10타점을 기록하고 있다. 휴스턴 전에서 대타로 나와 만루홈런을 때려내는등 최근 네 경기에서 12타수 7안타 1홈런 8타점을 몰아치고 있으며, 지난 세인트루이스 전에서 팀이 웨인라이트에게 뽑아낸 3안타 중 2개의 안타를 혼자 때려내기도 했다.
오윙스가 대학시절 선택의 기로에서 일찌감치 타자로서의 인생을 택했다면, 그의 야구 인생은 조금은 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 없기에, 오윙스는 더 늦기 전에 자신이 그토록 좋아하던 마운드에서 내려오기로 했다. 이제 그의 손에는 글러브와 야구공 대신 머리에는 헬멧을 손에는 방망이를 들고 경기장에 나서게 됐다. 언제나 그 곳을 응시하고 있었고, 자신이 줄곧 공을 뿌려대던 홈 플레이트 옆에 직접 들어서게 된 마이카 오윙스. 그가 만들어나갈 반전 스토리를 지켜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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